직장에서 해외 근무 발령을 받은 아버지를 따라 독일에 간 한 여고생의 경험담이다. 수업 시간에 낙태에 대해서 토론할 기회가 있었다. 다양한 논쟁 중에서 몇 가지가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혼전 임신 상태에서 남자친구와 헤어진 경우, 강간을 당해서 임신한 경우, 태아가 기형아인 경우, 이런 이유들이 중복된 경우에 태아를 어떻게 하느냐 하는 질문이었다. 한국 여학생은 이 경우들이 모두 당연한 낙태의 이유라고 생각했고 그 의견을 피력했다. 그런데 그녀 외의 모든 학생들은 어떤 경우에도 출산을 하겠다고 했다. 이 여학생은 왕따를 당하는 것 같은 묘한 기분이었다.
그녀는 친근한 교포 학생에게 이 상황을 설명했다. "내가 토론에서 왕따를 당했어." 그 교포 학생은 절대 왕따가 아니라고 했다. 자신도 어떤 이유에서든 임신을 하면 반드시 출산을 하겠다고 했다. "왜 그런데?" 하는 질문에 "내가 생명을 보호해야 하니까" 하는 대답이 돌아왔다. 법적 처벌이 두려워서가 아니었다.
여고생이 집에 와서 부모에게 이 토론을 말하면서 "이 나라 학생들은 생각하는 것이 나와 많이 달라요"라고 했다. 맞는 말이다. 이것이 교육의 힘이다.
최근 낙태에 관한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앞두고 낙태 찬성파와 반대파가 대립을 했다. 두 그룹은 같은 시간에 헌재의 정문 양쪽에서 시위를 하기도 했다.
낙태죄의 존재 여부와 낙태율은 상관관계가 없다. 우리는 낙태죄의 존재 여부보다는 낙태율에 더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낙태율은 생명에 대한 사랑과 반비례한다. 대한민국보다 출산율이 높은 프랑스에서는 혼외 출산이 가정 안에서의 출산보다 많다. 이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우리나라처럼 미혼 출산을 기피한다면 이런 일이 있을 수 없다. 우리가 배울 점은 생명 사랑이다. 사랑은 책임을 지는 것이다.
낙태 논쟁이 권리 주장(자기결정권, 재생산권, 건강권, 생명권), 경제 논리(양육비, 경력 단절), 죄책감 등의 단어로 표현될 때 우리 사회 영혼의 메마름이 드러난다. 헌재 앞 시위가 누구의 권리가 더 중요한가라는 차가운 법리 논쟁이 아니라 생명에 대한 사랑 경쟁이었으면 좋겠다.
태아 때문에 여성이 희생당하고, 여성 때문에 태아가 희생당하는 논리가 아니면 좋겠다. 임신으로 인하여 여성이 행복해지고, 여성이 태아를 보호하는 논쟁이었으면 좋겠다. 낙태 논쟁을 책임 윤리, 생명 사랑에서 바라보면 어떨까? 낙태가 생명 사랑이 아닌 것은 분명하지 않은가? 누구든 사랑받는 아이로 행복하게 자라날 수 있는 가정, 사람이면 누구나 존중받는 사회, 생명의 가치를 그 어떤 가치보다 높게 여기는 사회를 향해서 나아가야 할 것이다.
어거스틴은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사랑이다"라고 했다. "사랑하라. 그리고 네가 원하는 바를 행하라. 네가 말을 삼간다면 사랑으로 말을 삼가라. 네가 말을 한다면 사랑으로 말을 하라.… 사랑의 뿌리를 마음 깊은 곳에 간직하라. 이 뿌리에서는 선(善)밖에 나올 수 없다"라고 했다.
사랑이 없으면 수많은 논쟁과 다툼이 무슨 의미가 있으랴! 어떻게 하면 더 사랑할까? 어떻게 하면 함께 살 수 있을까? 유행가에서 그렇게 많던 사랑은 다 어디로 가 버렸나?
대구중앙교회대표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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