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책마담] 잇다, 있다, 잇다

"신나는 예술여행, 어린이청소년문학순회 '잇다'에 함께해 주신 여러분, 반갑습니다. 5월의 작가, 권정생을 되살려 생생하게 만나는 시간! 권정생 작가의 삶터, 안동으로 달려온 어린이책 작가들이 권정생을 잇는, 지금 어린이 문학을 이야기합니다."

지난 토요일, 떨리는 입술을 마이크에 갖다 대고 힘주어 말했습니다. 오후 2시를 조금 넘긴 시각, 안동 강남어린이도서관 강당에서였지요. 한가운데 넓게 깔아놓은 매트를 꽉 채운 어린이들이 엄마 아빠와 더불어 눈을 깜빡였습니다.

"반가운 인사도 나눌 겸 곁에 있는 분들과 손을 한번 잡아볼까요? 잇는다는 건 이렇게 닿고 만나는 거겠지요. 어제의 작가-권정생과 곳곳에서 달려온 오늘의 작가, 그리고 여기 모인 미래의 작가인 어린이들이 만나 서로 닿고 이어지는 이 자리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후원, 어린이청소년책작가연대 주최로 마련되었습니다. 첫 순서로 권정생 작가 소개가 있겠습니다."

마이크를 건네받은 서정오 작가는 권정생 작가 글씨가 담긴 원고지를 보여주었어요. 두 작가가 주고받은 편지였지요. 원고지에 적힌 글자가 마음에 훅, 들어와 꿈틀거렸습니다. 그림책 '훨훨 간다' 옛이야기 한 자락이 펼쳐지고, 서정오 작가의 옛이야기 책 '멍서방과 똑서방' 소개가 이어졌습니다. 김정미 작가가 신나는 노래와 몸짓으로 '엄마 까투리' 그림책과 자신의 책 '유령과 함께한 일주일'을 잇고, 김태호 작가가 권정생 선생님의 '비나리 달이네 집' 달이 이야기와 자신의 단편 동화집 '네모 돼지'에 나오는 단편 '기다려' 이야기를 엮어 들려주었습니다. 기타를 들고나온 김성민 동시 작가는 권정생 동시집 '삼베 치마'와 자신의 동시집 '브이를 찾습니다'를 이어, 동시 노래를 불러주었고요.

나는 '강아지똥' 동화를 낭독했습니다. 애니메이션 '강아지똥'에는 나오지만 조금 다른, 그림책 '강아지똥'에는 빠진, 강아지똥이 감나무 가랑잎과 만나는 장면과 바로 이 장면을요.
"강아지똥은 눈부시게 쳐다보다가 어느 틈에 그 별들을 그리워하게 되었습니다./ '영원히 꺼지지 않는 아름다운 불빛'/ 이것만 가질 수 있다면 더러운 똥이라도 조금도 슬프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강아지똥은 자꾸만 울었습니다. 울면서 가슴 한 곳에다 그리운 별의 씨앗을 하나 심었습니다."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물결치듯 흔들렸습니다. 하마터면 울음이 터질 뻔했지요. 문장마다 작가 권정생의 삶이 어려 있었습니다.

뒤이어 펼쳐진 '시야, 동화야, 놀자!' 시간에는 앞서 소개한 작품 속 단어와 문장이 담긴 색색의 종이를 아이들에게 내어주고, 무대 위 벽면에 마음껏 붙이게 한 다음, 흰 도화지를 한 장씩 나눠줬어요. 그리고 단어와 문장 종이를 떼어와 나만의 이야기를 만들어보자 했지요. 단어와 문장을 잇는 아이들의 솜씨는 대단했습니다. 좀처럼 이어지지 않을 것 같은 단어와 문장도 뚝딱뚝딱 매만져 하나로 꿰어내고 이어 붙였어요. 이렇게요. "달팽이가 있다. 밤에 있다. 무섭지도 않나보다. 최고다." "오늘은 안동에서 문제를 풀었어요. 벅차오르는 기쁨에 숨이 막혔다."

단어와 문장 종이를 징검다리 삼아 '나'의 이야기로 건너가는 아이들 모습에 잇는다는 건, 마음 길 내어 또 다른 시간으로 한걸음 내딛는 게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조금씩 나아가며 끝없이 이어지는 것, 그리하여 사라지지 않고 우리 곁에 내내 머물러 있도록 하는 것. 순간, '있다'로 다가오는 잇다! 여기, 잇다, 있다, 잇다….

돌아오는 길, 권정생 생가에 들렀습니다. 자그마한 흙집 마당에 들어서 맑은 하늘을 우러러 바라보았어요. 권정생 선생님, 어머니 사시는 그 나라에 잘 계신지요? 아이들이랑 놀면서 선생님 생각 많이 났어요. 또 올게요. 안녕히 계세요!

이숙현 동화작가.구미금오유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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