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권미강의 생각의 숲] 캄비세스왕의 재판

정말 끔찍한 그림이었다. 화가 제라르 다비드의 '캄비세스왕의 재판'을 본 것은 '법원을 법정에 세우다'라는 연극에서다. 두 장의 그림 안에 네 개의 이야기가 숨겨져 있는 이 그림은 끔찍하고 잔혹하며 엽기적이기까지 하다. 첫 그림은 재판관이 몰래 돈을 받는 모습과 체포되는 장면이, 두 번째 그림은 산 채로 살가죽이 벗겨지는 재판관과 재판관이 된 아들이 아버지의 벗겨낸 살가죽을 깔고 앉아 있는 그림이다.

판사들의 금품 수수를 내부 고발했다가 고초를 겪은 신평 변호사의 실제 이야기를 담아낸 연극에서 이 그림은 이야기를 풀어가는 장치로 사용됐다. 부패한 법관들로 골치를 썩던 브뤼헤시가 화가 제라르 다비드에게 의뢰해 탄생했다는 이 그림은 페르시아 왕 캄비세스가 부패한 판사 시삼네스에게 내린 형벌을 그대로 묘사했다. 재판관이 얼마나 공정해야 하는지를 효과적으로 보여줬지만 그림 속 행위는 너무나 야만적이다. 그럼에도 법을 집행하고 판결하는 재판관들이 얼마나 엄중하고 엄정해야 하는지 알 수 있다. 연극에서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는 주인공과 선배 재판관의 설전 중 "성역이 없다고? 성역이 있어. 그게 바로 우리야"라는 말이 다비드의 그림과 겹쳐졌다. 다른 죄목에도 끔찍한 형벌을 내리던 캄비세스가 판결을 내리는 재판관이 스스로 성역이 되는 걸 막으려는 의도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재판관의 판결에 따라 운명이 바뀌고 공정함을 잃어 갔을 때 사람들의 원성은 곧 왕의 권위마저 위협하는 엄청난 힘이 된다는 것을 알았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역사에서 수없이 잘못된 판결을 봐왔다. 권력, 돈과 결탁된 판결로 역사의 진실이 묻히고 죄인이 되고 직장과 가족을 잃고 평생을 폐인처럼 살았던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도 무수히 많다. 잘못된 판결의 희생양이 된 사람들은 산 채로 살가죽이 벗겨지는 고통보다도 더한 고통을 받으며 인생을 마감하기도 한다. 법을 집행하는 행위가 전지전능의 권위가 아니라 공정함을 다루는 일이라는 것을 '캄비세스왕의 재판'을 통해 다시 한 번 깨닫는다.

작가 권미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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