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고고학'이라고 하면 고리타분하거나 어려운 학문으로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 혹은 흥미진진한 모험과 보물들이 가득한 영화 '인디아나 존스'를 떠올리기도 한다. '강인욱의 고고학 여행'은 막연한 고고학을 한 고고학자가 유물을 발굴하는 과정에서 겪은 직접 체험과 그를 통해 깨달은 생생한 삶을 지혜가 녹여 풀어낸다.
◆유물로부터 시작되는 인문학, 고고학
고고학자 강인욱 교수가 지난 30여 년간 발굴해온 세계 유적들에 얽힌 이야기를 한 권의 책으로 엮었다. '폭넓은 시각을 가진 현장 고고학자'라는 유홍준 교수의 추천평처럼 그는 러시아, 시베리아, 몽골, 중앙아시아, 중국 등 다양한 국가에서 직접 발굴을 주도해온 현장의 경험이 풍부한 고고학자다. 책은 지은이가 고고학자로서 첫발을 내디뎠던 1990년대 벌교 조개무지의 발굴에서부터 발해 성터에서 발견된 고구려 문화를 계승한 갈색 토기, 시베리아의 움무덤에서 발굴한 자작나무로 뒤덮인 이름 없는 유해, 카자흐스탄의 황금인간에 이르기까지, 놀라우면서도 흥미롭고 때론 감동적이기까지 한 발굴 이야기들이 가득 채워져 있다.
이 책 속에는 무덤, 불, 유물 위조, 고고학자의 실수, 전쟁, 황금유물 같은 고고학에서 익숙하게 다루어지는 테마들이 있는가 하면, 향기, 음악, 술, 색(色), 문신 같은 생소한 주제들도 포함돼 있다. 심지어 마약, 돼지고기, 젓갈 등은 짐작하기 힘든 주제들도 등장한다.
동시에 고고학뿐만 아니라 역사와 예술, 음악, 문학, 심지어 한의학에 이르기까지 경계를 초월한 인문학적 사고를 펼친다. 지은이는 고고학이 단순히 유물의 진위 여부를 가리거나 연대를 밝히는 것에 국한된 학문이 아니라 인류의 정체성을 끊임없이 확인시켜주는 학문이라 말한다. "고고학은 쉽게 설명하면, 유물을 연구해서 과거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 지식, 문화 등을 밝히는 것이다. 인간은 왜 그렇게 과거 사람들의 모습에 관심이 많았을까? 단순한 호기심 때문에? 그렇지 않다. 그건 바로 과거를 생각하고, 이를 통해 미래를 예측하는 인류의 진화하는 숙명에 기인한다."

◆차가운 유물에서 느끼는 살아있는 과거
책은 궁극적으로 우리의 삶의 문제에 닿는다. '과거는 어떤 식으로 현재에 이어졌는가'라는 화두가 큰 줄기를 이루고, 이에 대한 질문과 대답들이 잔가지를 구성하고 있다.
우리 인류가 이 세계에 출현해온 이후 줄곧 고민해온 질문들, 우리는 왜 무덤을 만들어 죽은 사람을 기리는가, 불, 술, 음악은 인류에게 어떤 의미였는가, 색이 바랜 수천 년 전의 작은 토기 하나는 지금의 우리를 어떤 방향으로 이끄는가 등은 과거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지금의 우리 삶에도 유효하다.
지은이는 "역사는 우리가 사랑했던 사람들의 삶이 쌓인 지층과도 같다"고 말한다. 유물은 과거만을 비추어 밝히지 않는다. 과거의 진실을 찾아냄으로써 현재를 밝히고 나아가 미래 세대가 더 현명하고 가치 있게 자신들의 시대를 만들어가도록 조언한다.
과거의 인류도 현재의 우리와 똑같이 희로애락을 느끼면서 살았다. 하지만 그들의 숨결을 직접 느끼는 것은 쉽지 않다. 고고학이 찾아내는 과거 사람들의 모습은 차가운 유물뿐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눈으로만 봐서는 절대 그 진실에 가까이 갈 수 없다. 유물에 숨어 있는 이야기, 아주 오래 전 그들이 살았던 모습을 상상하고 느낄 수 있을 때, 고고학은 그들이 단순한 유물이 아닌 지금의 우리와 다를 것 없었던 사람이라는 걸 알려준다.
배기동 국립중앙박물관장은 추천사에서 "우리가 들어본 고고학 이야기 중에서 가장 상큼하게 지적인 흥분을 일으키는 책이다. 그동안 고고학의 발굴과 연구과정의 뒷이야기를 쓴 책들이 있었지만, 이 책은 유물에서 나는 오래된 곰팡이 냄새가 향기롭게 느껴지게 적었다"고 말한다. 320쪽, 1만6천원.
▷지은이 강인욱은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에서 본과와 석사를 졸업하고 러시아과학원 시베리아분소 고고민족학연구소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고고학자를 꿈꾸며 살아왔고, 지금도 경희대 사학과 교수로 근무하며 고고학을 강의하고 있다. 시베리아를 중심으로 매년 러시아, 몽골, 중앙아시아 등을 다니며 새로운 자료를 조사하고 있다. JTBC '차이나는 클라스'에 출연하고, 신문에 칼럼을 다수 연재하는 등 고고학의 진짜 매력을 대중에게 널리 알리고 있다. 주요 저서로 '유라시아 역사 기행', '진실은 유물에 있다', '북방 고고학 개론'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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