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봉산문화회관 '신명준-낙원의 형태'전

신명준의 설치 작품
신명준의 설치 작품 '낙원'

옛 이란에서는 '담으로 싸인 마당'을, 그리스인들에게는 잘 단장된 '페르시아왕의 정원'을, 불교에서는 '정토'를, 중국 도교에서는 '도원경'을 의미하는 공통된 단어는 무엇일까?

답은 고통이 없는 지복(至福)의 장소를 뜻하는 '낙원'(Paradise)이다.

봉산문화회관은 2019 유리상자 4번째 전시공모 선정작으로 '신명준-낙원의 형태'라는 설치작품을 마련, 팍팍한 현실에서 안식처를 떠올리는 현대인들에게 낙원의 이미지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하고 있다.

회화를 전공한 신명준은 평안하고 자유로운 안식처로서 우리 시대 낙원이 어떤 모습일지, 또 그 낙원이 구성하고 있는 사물들과 조형이 우리의 감수성과 어떻게 만나고 어떻게 예술의 영역으로 편입될 수 있는 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사방이 유리로 된 높이 5.25m의 공간에 신전을 연상하게 하는 4개의 기둥과 안식처의 안정감을 주기 위해 천장에 투명지붕을 구조물로 매단 이 작품은 바닥에 흔들리지 않는 확신을 돋보이게 하려는 듯 섬 같기도 하고 어렴풋이 별 같기도 한 흰색 나무판을 놓고 그 위에 작가가 일상 속에 수집한 사물들을 올려놓았다.

구슬형의 가로등 기구는 길가 어느 차단봉 위에 꽂혀 있었고, 물건을 받치는 팔레트는 주차금지 표시용으로 사용됐던 것이다. 또 버려진 밀대봉과 잘려나간 각종 호스, 부러진 사다리, 고장난 모니터, 양동이, 자투리 그물망, 깨진 거울 등이 식물 화분과 함께 설치돼 있다.

그러면서도 사물과 사물이 서로 관계를 맺고 있는 이 낯설면서도 평화로운 생태계는 작가가 만든 '낙원'의 형태이다. 그리고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세계에서 찾아낸 이 '낙원'의 은유 속에는 우연과 기대, 설렘을 통해 만남과 선택, 수집, 조합, 조형 등으로 이어지는 작가의 본능적 감수성이 한껏 묻어난다.

그럼에도 신명준이 구축한 '낙원'이 어쩐지 낯설기만 한 까닭은 그의 '낙원'이 현실의 일상 사물에서도 구축될 수 있다거나, 아니면 아예 '낙원은 없다'는 절망에 대한 어쩔 수 없는 인정일 수도 있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여기서 우리는 '낙원은 과연 존재하는 걸까'라는 원초적 질문에 맞닥뜨리게 된다.

청년 작가 신명준은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청년, 그리고 작가로서 살아가고 있다. 그의 삶이 결코 녹록하지 않음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그도 다른 청년들과 마찬가지로 살아남기 위해 무언가 유의미한 결과물을 남겨야 한다는 현실적 강박에 시달리기는 매한가지이다.

이에 대해 그는 다음과 같이 항변하고 있다.

"일상에서 볼 수 있는 방치된 사물을 필요에 의해 구매되고 만들어졌지만 결국 이용가치를 잃고 방치된다. 보통의 시선으로 이것들을 보면 일상 속 풍경에 지나지 않지만 다른 시각으로 보는 순간 낯설게 다가오는 존재들이다. 나는 그런 낯선 사물들을 모아왔고 그것들을 유기적으로 배치하여 낯설게 다가오는 존재, 가치가 주를 이루는 상상속의 낙원이라는 공간을 연출해보고자 한다."

전시는 봉산문화회관 2층 아트스페이스에서 10월 20일(일)까지. 문의 053)661-3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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