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는 민족 최대의 명절, '추석'(13일)이 3일 앞으로 다가왔다. 추석 하면 어른 세대들은 풍성한 식탁과 반가운 얼굴을 떠올리지만 며느리들은 고된 노동과 산더미 같은 설거지를 떠올린다. 특히 취업준비생이나 미혼남녀 2030세대에겐 추석은 피하고 싶은 날이란 인식이 팽배해 있다. 이처럼 연령대에 따라 추석을 보는 시각이 조금씩 다르고 연휴를 보내는 양상도 변하고 있다. 연령대에 따라 추석을 바라보는 관점을 정리해 봤다.
◆ "상호 양보·이해 필요"
대구에서 직장을 다니고 있는 박인수(가명·31)는 이번 추석 당일에만 고향 울진에 따로 내려갔다 올라오기로 부모님과 타협했다. 박 씨는 "올해 상반기에 치른 공무원 시험에 또 떨어졌다"면서 "명절 때면 일가친척이 많이 모이는데 부모님이 나로 인해 비교당하고 상처받을까 그렇게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박 씨는 이어 "내 문제로 부모님이 다른 친척 어른들에게 작아지는 모습을 보일까 그게 걱정돼 귀향을 포기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성주 벽진에 살고 있는 배일성(가명·63) 씨는 명절에도 오지 않는 자식들을 원망했다. 배 씨는 "'홍동백서'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면서 적어도 명절이 가족끼리 보내는 시간이라는 점만 자식들이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토로했다. 배 씨는 "내가 죽으면 아이들은 교회를 다니니 기도하고 예배로 대체하겠지만 나는 조상들에게 마지막까지 자식된 도리를 다하고 싶다"면서 "어른이 돼서도 자신의 뜻을 몰라주는 자식이 야속하다"고 말했다.
이러한 세대 갈등에 대해 전문가들은 "우리나라 사람들은 매우 강한 가족가치관을 가지고 있지만 세대별로 비교해보면 그 강도가 점차 약화되고 있는 추세"라면서 "부모와 자녀 간 원활한 의사소통과 평등하고 민주적인 가족분위기 조성을 통한 상호 간의 양보와 이해, 배려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조상 잘 섬겼으면 하는 60대 이상 어르신=명절에 가족과 모여 지내는걸 당연하게 여겼던 60대 이상 어르신들은 추석을 여전히 우리나라 고유의 명절로 여기고 있다. 평소에는 보기 힘든 자녀, 손주들과 함께하는 가족 명절로 생각한다.
김순자(63) 씨는 "추석은 온 가족이 만나서 가족의 의미를 되새기는 날이다. 몇 년 사이에 아들 둘을 장가 보내 며느리와 손주들이 생겼다. 명절에 얼굴 볼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기쁘다. 성묘도 가고 함께 차례 음식도 만들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설렌다"고 했다. 성기열(76) 씨는 "그저 자식들과 손주들이 모이는 게 좋다. 차례를 지낼 때 아이들에게 조상의 존함을 알려주고 그 분이 어떤 일을 하셨는지, 그 덕택에 우리가 이렇게 잘 살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하는데 아이들이 조상을 잘 알았으면 좋겠다. 그 마음을 바탕으로 해서 가족, 형제, 핏줄끼리 다툼 없이 의좋게 잘 살아갔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얼굴 보는 것만으로도 좋은 50대= 50대는 흩어져 사는 가족이나 친지들이 추석을 맞아 한자리에 모여 함께 음식을 만들고 차례를 지내는 것만으로도 좋다고 했다.
이형기(58) 씨는 "안동 큰집에 20, 30명이 모여 차례 음식을 만들고 차례를 지낸다"면서 "어릴 때만큼 설렘은 없지만 온 가족이 모여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따뜻한 느낌이 들어 좋다"고 했다. 김미자(54) 씨는 "추석 전날이 되면 친척들이 다 모인다. 음식을 만들면서 오랜만에 만난 친척들과 담소를 나누다 보면 시간이 금방 간다. 저녁에는 술 한잔 하면서 그간의 회포를 푼다. 그게 사람 사는 맛 아니겠느냐"고 반문했다.
▶명절증후군 앓는 40대=가족모임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해야 하는 40대들은 책임감을 느낀다고 했다. 특히 주부들은 차례음식 준비 때문에 이른바 '명절증후군'을 겪는다고 했다. 이영숙(가명·45) 씨는 지난 추석 때 말 못할 스트레스로 속을 삭였다고 했다. 이 씨는 장손의 며느리로 명절이 다가오면 무엇보다 차례상 준비에 정신이 없을 정도라고 했다. 이 씨는 명절 전날 시댁을 찾아 제일 먼저 음식준비를 한다. 하지만 이러한 노고는 친척들간 당연시 된지 오래다. 지난 추석 역시 동서들은 음식 준비가 마무리돼서야 얼굴을 내밀었다. 이 씨는 "명절은 오랜만에 부모님과 친지들을 만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지만, 역할 분담에 있어 아쉬움이 남는다"며 "명절이기에 싫은 소리를 할수 없어 참고 넘길 수밖에 없는 현실"이라고 토로했다.
40대 남자들 역시 장거리 운전으로 피로가 쌓인 상황에서 가족들 눈치보기 바쁘다. 넉넉지 않은 형편에 부모님 용돈을 챙기는 부담이 있는 데다 명절 스트레스로 예민해진 아내의 기분을 살펴야 하기 때문이다.
김진구 씨(가명··42)는 "명절에는 운전도 힘든데 이런 저런 이유로 집에 돌아가는 길에 싸우게 돼 피곤하다"며 "아내는 어머니로에게 들은 얘기로 상처 받았던 것을 얘기하는데 저는 아내 마음을 풀어주기 위해 비위를 맞추느라 진땀을 흘린다"고 토로했다.
김일형(가명·47) 씨 역시 "고생하는 아내의 투정을 안 받아줄 수도 없고, 그렇다고 집안 어른들의 눈도 의식해야 되고. 이리저래 명절은 힘들다"고 했다.
▶음식 준비 못 거드는 대신 선물 챙기는 30대=맞벌이를 하고 있는 이경진(36) 씨는 추석 전날 늦게 포항에 있는 시집엘 간다. 일 때문에 음식 준비를 돕지 못해 미안해서 선물을 신경 써서 챙긴다. "아무래도 몸 대신 현금이나 선물로 만회한다"고 했다.
두 아이를 둔 최인선(35) 씨는 추석 아침에 부산에 있는 형님네로 가 차례를 지낸다. 여느 때처럼 음식은 모두 시어머니가 준비한다. 차례를 지낸 후 오후 세 시쯤 친정이 있는 대구로 돌아온다. 최 씨는 자신을 "명절을 편하게 보내는 며느리"라며 웃었다.
초등학교 교사 이미정(가명·34) 씨는 아직 미혼이다. 이번 추석에는 휴가까지 붙여 일주일을 쉴 작정이다. 친구들과 제주도에 가기로 약속했다. 집안 식구 모두가 기독교인이므로 크게 음식을 할 일도 없다. 비행기표도 일찌감치 끊어 놓았다.
주진영(31)씨는 지난 추석 명절 세대간 격차를 실감한 이후 이번 추석명절에는 '혼추족'(혼자 추석을 보내는 사람)을 택할 작정이다. 지난 설 명절 때 어머니는 아버지와 사소한 일로 부부싸움을 했고, 진영 씨는 그 사이에서 눈치만 봐야했다. 회사에서 나온 상여금과 모아놓은 용돈을 털어 부모님께 드렸지만 돈 이야기로 싸우는 부모님 때문에 마음이 불편했다. 뿐만 아니라 친척들은 결혼을 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끈질기게 물어왔다. "옛날이었으면 애가 둘은 있겠다"는 친척들의 말을 흘려듣기 힘들었다.
▶취직 질문 부담스러워 혼자 휴식 취하는 20대=대학생 이서연(23) 씨는 졸업 후 취직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이 씨는 "조카들이 많다. 고향집에 가면 유아교육과에 다닌다는 이유로 늘 조카들을 떠맡았다. 올해는 일 핑계로 고향을 가지 않을 것"이라면서 "친구들을 만나 오랜만에 수다나 원없이 떨 생각"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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