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황지가 자리한 학산1리 답계(踏溪·댁기)에는 옛 역(驛)이 있었고, 사화(士禍)의 아픈 역사도 서려 있다. 1457년 밀양에서 경산(京山·성주)에 가던 김종직(金宗直)이 답계에 머물며 쓴 '조의제문'(弔義帝文) 때문이다. 고려때 설치된 답계역은 용암면 상언리 안언역(安偃驛)과 함께 성주를 드나드는 교통 요충지. 그는 답계역에서 꾼 꿈으로 중국 초나라 의제에 대한 글을 지었고 제자 김일손은 뒷날 이를 사초에 적어 넣었다.
그런데 이극돈이 자신의 비행이 사초에 기록된 데 앙심을 품고 김종직의 옛 글을 문제 삼아 연산군을 부추켜 사화를 일으켰다. 김종직 일파를 제거하는 음모를 꾸몄는데 바로 무오사화다. 연산군 4년(1498), 조의제문을 세조의 왕위 찬탈을 비방하는 글로 둔갑시켜 김종직을 부관참시한 사건인데, 4대 사화의 시작이 됐다. 같은 유학을 배운 이순흠은 못을 파 사람을 이롭게 했지만 이극돈은 목숨을 앗는 인물이 됐다. 이슬도 소가 먹으면 우유가 되고, 뱀이 마시면 독(毒)이 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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