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은 학식과 고매한 인품을 지닌 유학자임을 자처하던 사람이 한밤중에 젊은 과부와 정을 통하다 들켰다. 정신없이 줄행랑을 치다가 분뇨 구덩이에 빠졌는데 설상가상으로 앞에 호랑이가 입을 쩍 벌리고 있었다. 그런데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비굴한 변명으로 일관하는 양반의 위선에 역겨워진 호랑이는 호된 질책을 남기고 가버렸다.
새벽에 들에 나온 농부가 "여기서 뭘 하시느냐"고 묻는 목소리에 그제야 고개를 든 유학자는 금세 목소리를 가다듬고 자신의 언행을 그럴듯하게 둔갑시킨다. "하늘이 아무리 높아도 고개를 숙이지 않을 수 없고, 땅이 아무리 두터워도 조심스럽게 디디지 않을 수가 없는 법…." 조선후기 실학자인 연암 박지원은 한문 단편소설 '호질'(虎叱)에서 당시 양반 계층의 곡학아세와 위선적인 삶을 적나라하게 풍자했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이 지은 '소크라테스의 변명'은 이와는 완전히 상반된 개념이다. 젊은이를 타락시키고 불경죄를 저질렀다는 혐의로 재판정에 선 소크라테스가 고발인과 배심원들에게 토로했던 항변과 연설을 재현한 작품이다. 당대의 지식인이자 지성인이었던 소크라테스는 적당한 타협과 선처로 비켜갈 수도 있었던 죽음조차 피하지 않았다.
부끄러운 삶보다는 의로운 삶을 택했고, 살아서 침묵하기보다는 죽어서 일깨우려 했다. 그래서 소크라테스의 진술은 일반적인 변명이나 변론이 아니다. 오히려 자신의 철학적인 삶과 혼란한 사회에 대한 애정어린 항변이었다. 우리 현대 사회에도 한글학자 이희승의 수필 속 '딸깍발이' 같은 올곧은 선비정신을 지닌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다. 법조인 조무제 같은 분이다.
그는 청렴한 법관의 대명사였다. 대법관 시절에도 보증금 2천만원짜리 원룸에 살고 지하철을 타고 출퇴근을 하면서도, 월급을 아껴 모교에 장학금을 내놓았다. 관직에서 물러날 때도 '관피아'와 '전관예우' 같은 탐욕과 부정의 사슬을 단연코 거부했다. 일반인들은 상상도 못할 편법과 위법을 다 동원한 구린 의혹들에도 파렴치한 변명과 뻔뻔한 위선으로 국민을 우롱하고 있는 조국(曺國)이라는 벼슬아치와는 너무도 대비가 된다. '호질'의 호랑이조차 어안이 벙벙해질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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