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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훈의 대구 옛 이야기] 장진홍 의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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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영남중 교사
대구 영남중 교사

경북 칠곡군 출신의 장진홍(1895~1930)은 인명학교에서 수학한 후 1914년 대한제국 친위대를 개편하여 창설한 조선보병대에 입대하였다. 그는 1918년 중국 봉천으로 이동한 후, 하바롭스크에서 한인 100여 명을 모집하여 군대 양성에 힘썼으나 러시아 백군이 하바롭스크를 점령하자 활동을 멈추고 귀국하였다.

장진홍은 전답을 매각하여 600여원의 자금을 들고, 서적 행상을 가장해 전국을 누비며 일본군의 만행을 기록하였다. 이후 그는 미군 하사관 김상철에게 조사한 내용을 영문으로 번역하여 세계 각국에 배포할 것을 당부하였다.

이후 장진홍은 1927년 4월 무렵에 호리키리 시게사부로(堀切茂三郞)로부터 폭탄제조법을 익힌 후 직접 폭탄을 만들어 조선은행 대구지점, 경북도청, 경북경찰부, 조선식산은행 대구지점 등 4곳을 폭파할 계획을 세웠다. 그는 대구의 덕흥여관에 투숙한 후 그해 10월 18일 여관 종업원인 박노선에게 4곳마다 폭탄이 든 나무 상자를 건네줄 것을 지시하였다. 이에 박노선은 조선은행 대구지점에 나무 상자 1개를 전달하였으나, 포병 출신 은행원 요시무라 게츠(吉村潔)가 화약 냄새를 맡고 나무 상자를 개봉하여 도화선을 절단하였다. 그는 나머지 3개 상자도 찾아내어 건물 밖으로 내놓은 후 경찰에 신고하였다. 곧이어 폭탄 3개가 연달아 폭발하였는데, 은행 창문과 출입문이 부서지고 경찰과 은행원이 부상당하였다.

그 후로도 장진홍은 안동의 주요 기관과 영천경찰서를 폭파시키려다 무산되자, 곧바로 도일하여 동생 장의환의 집에 머물며 동경경시청 폭파를 준비하던 중 체포되어 국내로 압송되었고, 1930년 7월 31일 대구형무소에서 자정순국하였다.

조선은행 대구지점은 옛 하나은행 대구지점이 있던 장소인데, 현재 건물은 허물어지고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그 앞 빈터에 장진홍 의거를 알려주는 푯말을 세워 그의 독립정신을 되새기려는 움직임이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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