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경제 칼럼] 규제 완화보다 적극행정이 더 중요하다

법무법인 천우 이정호 변호사

이정호 변호사
이정호 변호사

최저 경제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보이는 한 해가 저물고 있다. 미중, 한일 무역 갈등이라는 환경적 어려움 속에서 고군분투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시기를 보낸 듯하다. 총선 일정까지 기다리는 새해를 목전에 두니, 정부는 신년의 경제정책 자료들도 때맞춰 배포하고 있다.

각 부처별 정책 방향에서 역시 눈에 띄는 것은 규제를 완화하고 중소 상공인이나 미진한 산업 분야의 진흥을 위한 지원 방안을 지속적으로 펼쳐 나가려는 것이다.

그런데 이에 관한 세간의 반응은 신통치 않다. 정책이나 개선안이 미흡한 탓일 수도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규제 철폐나 완화에 관한 제도나 정책보다 이를 실행하려는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의지에 대한 불신이 큰 탓이리라.

사실 정책 당국에서 발생하는 가장 큰 폐해는 관료주의와 보신주의에 입각하여 법에서 위임한 재량조차도 충실히 행사하지 않으려는 자세에 있다. 기업 활동에서 인허가라는 거대한 장벽에 좌절해 본 기업가라면 그 문제점을 절감해 보았을 것이다.

해당 기업의 관점뿐만 아니라 공공 측면에서도 절실히 필요한 행정처분이 오로지 처분 후 생겨날 반대 당사자들의 민원 때문에 폐기되고 만다. 이해관계의 조정이라는 허울 좋은 명목을 들지만 더 결정적 동기는 민원 후 발생할 담당자의 부정적 인사고과 때문이라는 건 알 사람은 다 안다.

따라서 법령과 제도를 구비해 놓고서도 현장의 담당자가 걸쇠를 잠그고 복지부동한다면 전부 무용지물이다. 신기술이나 신산업 분야에 규제 샌드박스를 만들어 신기술 등의 초기 실현이 가능하도록 해 놓고서도 정작 산업에 편입된 뒤 종전처럼 감독의 장벽을 쳐 버리면 아예 나서지 않은 것보다 못한 지점에 봉착할 수 있다. 지자체의 소극적 인허가 판단 원칙 때문에 2000년 이전에 시작된 아파트 재건축 사업이 무려 20년이 넘도록 방치되는 수도권 내 사례도 있다.

결국 규제 완화의 원론적 대책이 경제성장의 실질 동력으로 기능하려면 일선 공무원이 규제 관련 법령의 집행 단계에서 소신껏 재량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야 한다. 이른바 적극행정을 지원하고 배려할 수 있는 장치가 보완되어야 하는 것이다.

감사원에서 적극행정 면책 제도를 도입한 지는 꽤 되었으나 정작 공무원의 소신 행정을 충실히 뒷받침하고 규제 완화까지 나아가지는 못하고 있다. 최근 지자체별로 관련 조례를 제정하여 적극행정의 면책 기준을 구체적으로 마련하는 경우도 생겨나고는 있으나 징계 면책을 위한 형식적 기준을 정한 수준에 불과하다.

적극행정은 단순히 공무원의 업무 충실도와 적극성을 높여주고 쌓인 민원을 해소하는 기능뿐만 아니라 작금과 같이 경제성장의 정체 구간에서는 기업가에게 활로를 열어주고 실질적 규제 완화 장치가 된다. 적극행정을 실행한 공무원에 대한 징계 면책이나 포상 판단을 위하여 다방면의 전문가를 포함시킨 국민배심제 같은 기구의 설치도 고려할 만하다.

행정의 과오는 해악이나, 더 나은 행정을 시도조차 안 하는 것은 더 큰 해악이다. 적극행정은 행정의 질을 높이고 기업가의 활동을 윤택하게 하는 행정의 기본 방편이라 할 수 있다. 차원은 다르지만, 사법부가 무죄 선고에 다소 소극적이고 대법원이 심리불속행 제도를 과하게 적용하여 재판의 진입 장벽을 치는 태도 역시 비슷한 관점에서 재고할 필요가 있다.

마침 한·중·일 3국 정상의 만남의 장이 열렸다. 월나라 구천을 보필한 범려와 같이 지혜로운 자가 정상을 지원하게 되고, 세 정상 간 현명한 대화로 지난해 쌓였던 갈등의 장벽이 허물어지고 동시에 밝은 새해 경제 청사진이 그려지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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