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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의 부장들 후기(=쿠키) "박정희가 심은 전두환이라는 씨앗"

오른쪽 인물이 전두환 보안사령관 모티브 전두혁 보안사령관(배우 서현우 분). 이 영화의
오른쪽 인물이 전두환 보안사령관 모티브 전두혁 보안사령관(배우 서현우 분). 이 영화의 '진 주인공'이 아닐까. 네이버 영화

영화 '남산의 부장들'이 22일 개봉한 가운데 관람 후기와 해석, 그리고 모티브가 된 실제 사건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남산의 부장들은 첫날 예매율이 50%에 육박하며 상영작들 가운데 선두를 달리고 있고, 곧 이어질 설 연휴에도 이 같은 상황이 지속되면 흥행 대박을 칠 모양새다.

앞서 흥행에 성공한 영화 '백두산'에도 출연한 이병헌 등 스타 배우들이 젊은층 관객을 그러모으는 모습이고, 실제 현대사 속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박정희 대통령을 암살한 '10.26 사건'을 매개로 이 사건을 실제로 접했던 기성세대도 객석을 꽤 채우는 모습이다.

영화를 보기 전 접할 수 있는 캐스팅 관련 설명은 이렇다.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을 모티브로 하는 김규평 중앙정보부장 역은 배우 이병헌이, 박정희 대통령을 모티브로 하는 박통 역은 배우 이성민이, 이전 김형욱 중앙정보부장 모티브인 박용각 중앙정보부장 역은 배우 곽도원이, 차지철 대통령 경호실장 모티브의 곽상천 대통령 경호실장 역은 배우 이희준이 각각 맡았다.

15일 오후 서울 용산구 CGV 용산아이파크몰에서 열린 영화
15일 오후 서울 용산구 CGV 용산아이파크몰에서 열린 영화 '남산의 부장들' 언론시사회에서 배우 곽도원(왼쪽부터), 이성민, 이병헌, 이희준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런데 관객들이 영화 관람 후 새롭게 바라보게 되는 인물이 있다. 바로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을 모티브로 하는 전두혁 보안사령관이다. 배우 서현우가 맡았다.

분명히 온라인에서 영화 관련 정보를 검색했을 땐 주연 4인(이병헌, 이성민, 곽도원, 이희준)에 비하면 큰 비중이 아닌 걸로 보였고, 조연 김소진(로비스트 수지 박 톰슨 모티브의 로비스트 데보라 심 역)과 비교해도 비중이 작은 배역으로 인지됐다.

그러나 영화를 보면 전두혁의 등장을 기점으로 주요 인물들의 운명이 파국으로 향하기 시작한다. 아울러 영화 말미(쿠키 영상 등)에는 전두혁의 의미심장한 모습이 조명되는데, 사실상 '진 주인공'(작품에서 공개적으로 드러내지 않는 진짜 주인공)의 존재감을 보여준다.

실제 역사에서도 박정희 대통령 사망 후 잠깐의 과도기를 거쳐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정권을 잡는다. 10.26 사건 수사를 맡았다가 12.12 군사반란을 일으켜 군을 장악했고 곧장 새 대통령이 된 것.

전두환은 군인 출신인 점,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점, 장기간 독재한 점 등이 박정희와 닮았다. 사실 전두환은 박정희가 자신의 왼팔 및 오른팔인 차지철과 김재규에 대한 견제용으로 선택한 인물이다.

그러면서 전두환은 박정희가 심은, 새로운 군부독재의 씨앗이 된 셈이다. 김재규가 박정희와 차지철을 죽였고, 김재규 역시 사형을 선고받아 죽었다. 5.16 군사정변으로 만들어진 권력이 시간이 지나며 뒤틀리고 누수되는 걸 방지하는 도구로 기용된 전두환이, 다시 권력 그 자체가 된 셈이다.

이병헌, 김재규. 네이버 영화, 매일신문DB
이병헌, 김재규. 네이버 영화, 매일신문DB

박정희와 전두환의 차이도 있다. 박정희는 측근 김재규에 의해 처단됐으나, 전두환은 누구에게도 처단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물론 전두환은 12.12 군사반란에 대한 법적 처벌을 선고받은 바 있으나, 김영삼 정부에 의해 사면됐다.

남산의 부장들에서 박통과 김규평은 서로 다른 정치 철학 탓에 갈등한다. 박용각은 5.16 혁명 동지 가운데 가장 먼저 박통의 뒤통수를 친 인물이다. 김규평과 늘 언쟁을 벌이는 곽상천은 박통을 무조건 추종하는듯 보인다. 그러나 사실 그가 따르는 건 박통이라기보다는 1인자 그 자체로 읽힌다. 그게 2인자 자리를 유지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곽상천의 모티브가 된 차지철에 대해 영화 원작 '남산의 부장들'의 저자 김충식 가천대학교 부총장은 '병정놀이에서 끝난 어른'이라고 한 언론 인터뷰를 통해 설명한 바 있다. 박통과 김규평의 '수준 높은' 갈등극에는 끼지 못하고 제풀에 고꾸라진 측면이 있다는 얘기.

그러면서 이들이 서로를 의심하고 견제하고 심지어 죽이기까지하는 상황이 권력의 본질로 영화에 그려진다. 자신이 가진 권력이 언제까지 유지될 지 늘 불안해하며 술에 취해 사는 박통이 히스테리라고 봐도 될 정도로 신경질적으로 측근들을 대하는 모습이 그 바탕에 깔려 있다.

영화
영화 '남산의 부장들'의 '박통' 역 배우 이성민. 네이버 영화
이성민, 박정희. 네이버 영화, 매일신문DB
이성민, 박정희. 네이버 영화, 매일신문DB

반면 전두환은 달랐던 듯하다. 훗날 자신을 백담사로 유배를 보낸 친구 노태우 말고는 그와 큰 갈등을 겪거나 배신한 측근은 없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말년이 박정희와 달리 비극적이지 않은 까닭으로 읽힌다. 지난해 12.12 군사반란 40주년을 맞아 쿠데타 주역들과 함께 오찬을 즐긴 모습이 대표 사례이다. 박정희의 말로를 생생히 지켜보고는, 박정희의 군부독재 1.0을 자신은 2.0쯤으로 업데이트시켰던 건 아닐까.

전두환 전 대통령이 12·12 군사반란을 일으킨 지 40년이 되는 날인 12일 전씨가 군사 반란에 가담했던 인물들과 서울 강남의 고급 음식점에서 기념 오찬을 즐기는 장면을 정의당 임한솔 부대표가 직접 촬영해 언론에 12일 공개했다. 연합뉴스
전두환 전 대통령이 12·12 군사반란을 일으킨 지 40년이 되는 날인 12일 전씨가 군사 반란에 가담했던 인물들과 서울 강남의 고급 음식점에서 기념 오찬을 즐기는 장면을 정의당 임한솔 부대표가 직접 촬영해 언론에 12일 공개했다. 연합뉴스

한편, 영화에는 박정희 모티브 인물은 나오지만 그의 자식들인 박근혜(당시 나이 27세), 박근령(당시 나이 25세), 박지만(당시 나이 21세) 남매 모티브 인물들은 등장하지 않는다. 아울러 영부인 육영수는 영화의 모티브가 된 사건 기준 5년 앞서 문세광에게 죽임을 당했다.

마찬가지로 노태우(당시 수도경비사령관), 김영삼(당시 신민당 총재), 김종필(당시 10대 국회의원) 등의 인물들도 등장하지는 않고 배우들의 대사를 통해 언급만 된다.

그리고 10.26 사건 당시 궁정동 안가 술자리에 가수 심수봉과 광고모델 신재순이 불려간 바 있다. 이를 모티브로 영화에는 별다른 이름이 없는 여가수와 여대생이 등장한다. 여가수는 박통 앞에서 통기타를 치며 가수 이애리수의 '황성의 적(황성옛터)'을 부른다. 이 노래는 극중 앞서 박통이 술자리에서 홀로 읊조리기도 했다. 미리 연주한 레퀴엠(진혼곡)이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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