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의 기세가 심상치 않다.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전 세계를 공황 상태로 몰아가고 있다. 지난 12일 세계보건기구(WHO)는 '팬데믹'(Pandemic) 즉, 세계적 대유행을 선언했다.
마마와 더불어 조선시대 사람들에게 가장 흔하면서도 공포의 대상이 되었던 질병은 학질(瘧疾)이었다. 학질은 사람이 견디지 못할 정도로 포악스러운 질병이라 해서 붙은 이름이다. 19세기 후반 조선에 온 의료 선교사 알렌이 1885년부터 1년간 제중원에서 진료한 후 작성한 보고서에 의하면, 학질 환자가 가장 많았던 것으로 나타난다.
학질은 말라리아에 감염된 모기가 사람을 물면 모기의 침샘에 있던 말라리아 원충이 사람의 핏속으로 들어가 감염되는 질병이다. 학질에 걸리면 설사, 구토, 발작 같은 증상이 나타난다. 특히 열이 심하게 나면서 땀을 많이 흘렸다. 허준의 '동의보감'에는 학질에 대해 '처음 발작할 때에는 먼저 솜털이 일어나고 하품이 나고 춥고 떨리면서, 턱이 마주치고 허리와 등이 다 아프다. 춥던 것이 멎으면 겉과 속이 다 열이 나면서 머리가 터지는 것같이 아프고 갈증이 나서 찬물만 마시려고 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학질은 시간 간격을 두고 증상이 주기적으로 일어나는데, 이를 '직'(直)이라고 표현했다. 임진왜란 시기 피란 상황을 일기로 남긴 오희문의 '쇄미록'에는 '아들의 처도 학질에 걸려 지금까지 10여 직을 앓았다'고 표현하고 있다.
병에 걸렸을 때도 고생이 심할뿐더러 그 병이 낫는 것도 여간 힘든 게 아니었기에, 지금도 괴롭거나 힘든 일에서 벗어나느라고 진땀을 뺄 때 '학을 떼다'는 말을 사용하고 있다. 쇄미록에도 '이각'(離却)이라고 기록돼 있다. 조선시대에도 학질에 대해서는 '떼고 물리친다'는 표현을 했음을 알 수가 있다.
쇄미록에는 오희문 본인을 비롯해 가족들이 학질로 고생한 모습이 나타나 있으며, 막내딸 단아가 학질로 사망했음을 기록하고 있다. 단아는 1593년 5월 학질에 감염됐고, 1597년 2월 결국 사망했다. 오희문은 "아들이 앉아서 단아를 안고 내가 양손을 잡고 있는데, 잠시 뒤에 기증(氣證)이 위로 올라오고 가래까지 끓어 말도 하지 못한다.…약이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않고 가래가 끓어서 소리가 나더니 끝내 내려가지 않고 콧구멍으로 도로 나온다. 결국 말 한마디도 못하고 훌쩍 떠나 버렸다"고 하며 딸을 잃은 아픔을 표현했다.
조선시대 학질의 치료법으로는 의학적 처방과 함께 주술, 제사와 같은 방법들이 시도됐다. 동의보감에서는 학질이 음과 양이 뒤섞이고 오한과 열이 번갈아 나는 것이기 때문에, 이를 치료하기 위해서는 일단 음과 양을 갈라지게 하는 처방법을 썼다. 음과 양을 가르는 약으로 시령탕 등을, 세게 치는 약으로 불이음 등을, 위기(胃氣)를 보하는 약으로 노강양위탕 등을 처방했다.
학질 치료에는 주유(呪由), 양법(禳法), 불양(祓禳) 등의 기도나 푸닥거리가 행해지기도 했다. 주술에 의지하는 경향은 왕실에서도 행해졌다. '세종실록'에는 양녕대군이 학질에 걸리자 어의(御醫)와 주문(呪文) 읽는 승려를 보내어 치료하게 했다는 기록이 보인다. 효종 대에는 세자가 학질을 앓았는데 침이나 약, 부적도 효험이 없었다. 옹이 '놀라게 하면 학질을 떨어지게 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세자 옆에 질그릇을 떨어트려 놀라게 하려다가 궁녀가 떨어져 죽은 사례가 '공사견문록'에 기록돼 있다.
쇄미록에도 '밤에 사내종을 시켜서 학질 귀신을 잡게 했다'는 기록이 보이는데, 얼마나 답답했으면 주술이나 귀신의 힘으로 학질을 물리치고자 했을까? 과학과 문명이 발전한 현재도 코로나19의 공포로 각종 민간요법이 전파되고 가짜뉴스까지 횡행하는 것을 보면, 옛사람들의 행위들이 이해되기도 한다. 질병이 쉬이 물러가 소중한 인명이 보호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조선과 오늘날의 사람들 모두 같을 것이다.
학질의 극복이 '학을 떼다'라는 말로 이어졌듯이, '코로나를 떼다'라는 말이 과거의 이야기로만 남을 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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