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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부] 달비골 별서와 붓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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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열 논설위원
정인열 논설위원

'뜰에 핀 붓꽃이 향산(香山) 선생 붓이 연상되어 보냅니다.'

코로나로 일상의 삶이 사라진 지난달 12일 한 장의 사진이 눈에 확 들어온다. 2003년 공직을 퇴직, 시간이 지났지만 대구수목원 조성에 한 역할을 했던 공직 시절처럼 대구 역사를 공부하면서 대구의 산하와 환경, 자연을 벗 삼아 식물과 꽃들을 찾고 아끼는 마음은 변함없는 그였다.

그런데 그가 보낸 붓꽃에 담긴 사연이 남다르다. 향산은 대구의 독립운동가로, 1915년 눈이 펑펑 내리던 정월 보름 앞산 안일암에서 시 짓는 모임 즉 시회(詩會)를 가장하여 조선국권회복단이란 비밀결사를 만들고 통령(統領)을 맡았고, 파리장서운동에도 깊이 관여했으며, 일제 고문으로 1942년 생을 마칠 때까지 독립운동에 나선 인물 아니던가.

그가 굳이 달비골을 찾아 아무도 모르는, 그래서 찾지도 않는 한 채의 오래된 집에 들러 붓꽃을 하염없이 바라본 까닭은 있다. 100년 전, 대구의 월배 달비골 한적한 산자락에 지은 향산의 별서(別墅)는 시도 짓고 몰래 독립의 꿈을 꾸던 곳, 또 구름을 바라보던 첨운재(瞻雲齋), 송석헌(松石軒)으로 알려진 곳이 어느덧 세상에서 잊힌 때문이다.

그러다 지난 2018년, 향산의 손녀(윤이조)가 할아버지에 대한 어렴풋한 기억과 별서에서 즐겁게 뛰놀던 어린 시절 추억을 더듬어 출간한 책 '지나간 것은 다 그립고, 눈물겹다'로 다시 세상에 소개된 곳이다. 하지만 그런 사연이 깃든 그곳에서 광복의 꿈을 꾸다 이루지 못하고 세상을 뜬 사실을 과연 누가 알기나 할까.

그것을 답답하게 여겼던 그였기에 그날도 발길을 옮겼다가 마치 향산이 과거 독립의 꿈을 꾸며 심기나 한 듯한 붓꽃이 집 뜰에 곱게 핀 모습이 시를 짓던 향산의 붓으로 보였던 모양이다. 뜰에 핀 붓꽃을 보고 글을 쓰고 광복을 그렸을 향산을 알리고 싶은 그의 마음이 닿았을까. 아니면 안달하던 마음이 통했을까.

최근 그곳에 안내판과 글이 걸렸다. '첨운재 독립운동 모의장소'라는 표시와 향산의 독립운동, 옛 활동에 관한 간단하지만 필요한 설명을 담은 안내판이다. 대구시 도시공원관리사무소에서 자료를 찾고 정보를 모아 최근 설치한 결과다. 잘 보이지 않지만 대구의 소중한 자산을 아끼는 퇴직 공무원 이정웅 씨의 마음과 시청의 조치가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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