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박지원의 비밀

28일 오전 박지원 국정원장 후보자가 서울 여의도 자택을 나서며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28일 오전 박지원 국정원장 후보자가 서울 여의도 자택을 나서며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경훈 논설위원
정경훈 논설위원

영국 역사학자 폴 존슨은 1939년 8월 23일 체결된 독소불가침조약(서명자인 나치 독일 외무장관 요아힘 리벤트로프와 소련 외무인민위원회 의장 뱌체슬라프 몰로토프의 이름을 따 '몰로토프-리벤트로프 조약'이라고도 한다)을 '불가침 조약'이 아니라 "단순히 폴란드 침공 조약일 뿐"이라고 했다.

조약의 핵심은 "10년간 서로 공격하지 않으며 한쪽이 제3국의 공격을 받으면 그 국가를 지원하지 않는다"고 공개한 내용이 아니라 폴란드를 동서로 갈라 먹기로 한 비밀 의정서라는 것이다. 이에 따라 나치는 같은 해 9월 1일, 소련은 9월 17일 각각 폴란드를 침공해 각자의 권역(圈域)을 점령했다. 이후 나치와 소련은 같은 달 28일 '독소 국경 및 우호조약'을 체결해 '분할'을 매듭지었다.

비밀 의정서는 꼭꼭 숨겨져 있다가 1945년 독일이 항복한 뒤 연합국이 독일 비밀문서를 압수하고서야 드러났다. 그러나 소련은 1991년 소련 붕괴 때까지 비밀 의정서의 존재를 계속 부인했다.

이런 사실은 독일과 소련이 전쟁을 하지 않았거나, 연합국이 전쟁 목적을 '추축국의 무조건 항복'으로 결정한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과 처칠 영국 총리의 '카사블랑카 합의'(1943년 1월)에서 후퇴해 나치와 적당한 선에서 종전(終戰)에 합의하고, 그래서 히틀러 정권이 존속됐다면 과연 비밀 의정서가 햇빛을 보았을까라는 의문을 낳는다.

그러나 역사는 아무리 단단히 봉인해도 '시간의 시험'을 견뎌내지 못하고 그 추한 모습을 드러내고야 마는 비밀들이 얼마나 많은지 잘 보여준다. 박지원 국정원장의 주도로 현대그룹이 2000년 남북 정상회담 직전 북한에 5억달러(5천만달러는 현물)를 송금한 '비밀'이 바로 그렇다. 2002년 국정감사에서 '사실'이 드러나면서 '박지원의 비밀'이 견뎌낸 시간은 고작 2년에 그쳤다.

그러나 당시 실제 송금액은 5억달러가 훨씬 넘는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대북송금특검'이 찾아낸 것이 5억달러일 뿐 실제로는 8억5천만달러 또는 10억달러에 이른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2000년 남북 정상회담 직전 북한에 3년간 총 30억달러 규모를 지원한다는 '경제협력 합의서'에 박 국정원장이 서명했다는 의혹까지 제기되고 있다. 과연 박지원의 비밀은 어디까지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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