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열린 영국 총선에서 보리스 존슨 총리가 이끄는 보수당이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며 재집권에 성공했다.
영국 보수당은 세지필드를 비롯해 '붉은 벽'(red wall)으로 불리는 전통적인 노동당 강세 지역이었던 미들랜즈와 잉글랜드 북부에서도 50석 이상을 확보하면서 1987년 이후 최대의 승리를 거머쥐었다.
보수당은 야당 모든 의석을 합한 것보다도 무려 80석이 많은 365석을 확보하는 기록을 세웠다.
한국 보수 정치권에서는 유권자들의 표심을 제대로 읽어내고 자극했다는 호평을 받는 영국 보수당의 개혁 성공과 위기 극복 사례에 주목하고 있다.
2016년 4월 20대 총선부터 지난 4월 21대 총선까지 네 차례 전국 선거에서 모두 참패한 한국 보수 정당이 변화하는 데 있어 상당히 의미 있는 이정표를 제시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12월 조기총선에서 압승한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 [AP=연합뉴스]](https://www.imaeil.com/photos/2020/08/08/2020080820420755089_l.jpg)
◆보수당이 외친 단순한 메시지의 힘
영국 보수당은 '브렉시트(Brexit·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완수'(get Brexit done)라는 단순하고 강렬한 메시지를 내세운 게 총선 승리에서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일간 가디언은 보수당의 총선 승리 요인을 ▷브렉시트 ▷메시지 단순화 ▷안정 우선 전략 ▷노동당의 인기하락 ▷보리스 존슨 등의 키워드로 분석했다.
이에 따르면 존슨 총리는 총선 기간 보수당이 승리하면 브렉시트를 완수하겠다는 메시지를 계속 반복해서 언급했다.
이러한 일관된 메시지가 2016년 6월 국민투표 이후 3년 반이 지난 시점까지 브렉시트 혼란이 지속하는 데 지친 영국 유권자들의 표심을 자극했다는 분석이다.
애초에는 브렉시트 시한이었던 지난해 10월 말 영국이 아무런 협정을 맺지 못하고 EU를 탈퇴하는 '노딜'(no deal) 브렉시트 우려가 고개를 들기도 했다.
집권 보수당이 하원 과반에 못 미치는 의석수로 인해 브렉시트를 포함한 각종 정책 추진 동력을 상실하는 등 위기에 몰리며 여론이 악화되자 보수당은 브렉시트를 핵심 공약으로 내걸고 조기 총선 카드를 꺼내 든 것이다.
결국 존슨 총리는 노동당을 누르고 압승했고 자신의 국정 장악력까지 만들어 냈다는 평이다.
이와 함께 영국 보수당이 유권자들에게 쉽고 단순하게 전달될 수 있는 공약에 집중한 것에도 주목해야 한다.
존슨 총리는 전반적으로 2017년 총선 당시의 테리사 메이 총리보다 낫다는 평가를 받았다.
TV토론을 회피했던 메이 총리와 달리 존슨 총리는 제러미 코빈 노동당 대표와 두 차례 TV 양자토론에 나가 맞붙었다.
그동안 말실수로 논란을 일기도 했던 존슨 총리는 이번 총선 기간에는 최대한 신중하고 차분한 모습을 전략적으로 구사하기도 했다.
존슨 총리는 당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 참석차 런던을 찾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도 함께 있는 시간을 최소화할 정도였다.
영국에서 인기가 없는 트럼프 대통령과 가까운 모습을 보일 경우 총선에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반면 영국 제1야당 노동당은 전통적인 노동당 강세의 여러 지역구에서 보수당에 대거 밀리면서 1930년대 이후 최악의 총선 패배를 기록했다.
존슨 총리와 달리 제러미 코빈 노동당 대표는 노동당이 총선에서 승리하면 브렉시트 제2국민투표를 개최해 영국의 EU 탈퇴 여부를 다시 국민에게 묻겠다고 밝혔다.
브렉시트 혼란이 지속되는데 지친 영국인들이 신속하게 브렉시트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존슨 총리의 간결한 메시지를 택한 것이라는 분석에 힘이 실린다.
존슨 총리는 총선 이후에도 국민보건서비스 개선, 전통적인 노동당 지지 지역이었던 잉글랜드 북부에 대한 지원 확대 등을 통해 앞으로도 지속적인 총선 승리의 발판을 마련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드러내기도 했다.
존슨 총리는 총선에서 압승을 거둔 다음 날 런던에서 보수당원들을 대상으로 한 연설에서 "당신이 아마도 다음에는 노동당으로 돌아가더라도 나는 이번에 보여준 신뢰에 매우 겸허한 마음을 갖고 있다. 절대로 당신의 지지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겠다"면서 "당신이 이번에 나에게 투표한 것이 옳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미래에도 당신의 지지를 얻기 위해 밤낮으로 죽으라고 일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보수 기존 문법 바꾸고, 가치는 간결하게 재정립해야
정치권 일각에서는 지난 4·15 총선 참패로 국민들로부터 혹독한 심판을 받은 보수당은 자신들의 뿌리인 정체성부터 치열하게 고민하고 성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미래통합당은 지난 6월 당이 추구하는 지향점, 근본적인 방침을 의미하는 정강·정책 개편에 착수한 바 있다.
TF위원장인 김병민 비대위원은 이 자리에서 "영국 보수당은 2000년대 초반 마이클 하워드 당수가 보수주의 18개 신조를 선보이면서 새로운 보수정당을 꾀했다"며 "간결하게 보수정당의 가치를 재정립해 재집권이 가능했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보수 정당이 영국의 보수당과 같이 기존 보수의 문법에서 벗어나는 메시지를 내야 한다고 주문한다.
대표적 보수 성향 지식인인 박지향 서울대 명예교수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영국 보수당의 힘에 대해 "노동당은 노동계급만의 정당이지만 보수당은 모두의 정당이라고 내세운다. 그게 오늘날까지도 호소력을 갖는다"고 한마디로 설명했다.
영국 보수당의 역사를 다룬 그의 저서인 '정당의 생명력: 영국 보수당'을 통해서도 "보수주의는 변화에 반대하거나 저항하지 않는다"며 "변화를 무조건 거부하는 것은 정체되고 화석화된 사회를 낳을 뿐이고 오히려 혁명이라는 과격한 변화를 사전에 예방하기 위해서는 사회제도의 개혁이 때때로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한다.
그러면서 "1830년대 무렵부터 보수당은 '보존하기 위해 변화할 필요성'을 인지하고 있었다. 1830년대에 로버트 필이 보수당을 당명으로 채택했을 때 필 역시 개혁이야말로 보수를 위한 유일하게 신뢰할 수 있는 방식이라고 주장했다"며 "보수주의자들이 변화를 배제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반드시 기억돼야 한다"고 부연했다.
보수정당이 세대에 따른 지지층을 확충할 필요도 있다고 제시한다.
박 교수는 "영국 보수당은 절대로 노년층만 지지하는 정당이 아니었다. 1979년 총선에서 보수당은 35세 이상보다 이하인 유권자들의 더 많은 지지를 받았으며 1983년과 1987에도 젊은 사람들이 더 많이 보수당에 투표했다"고 말한다.
이와 함께 김보영 영남대 새마을국제개발학과 교수는 '베버리지 복지국가에서 캐머런 정부까지 : 복지국가 패러다임의 변화에 있어 싱크탱크의 역할과 전략에 대한 영국 사례 연구'(2015) 논문을 통해 "주요한 정권 교체에 앞서 복지와 경제의 관계에 대한 연구를 축적한 싱크탱크가 있었으며, 이들과 새로운 정치세력이 연계되면서 새로운 복지국가의 패러다임이 전면화됐다"고 분석했다.
복지국가의 새로운 비전을 만들 싱크탱크가 필요하다는 것으로, 이는 최근 통합당이 추진하고 있는 과감한 복지 정책 구상과 맞닿아있다.
앞서 김종인 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취임 이후부터 연일 기본소득과 고용보험 확대, 전일보육제 등의 복지 정책과 관련한 담론을 쏟아낸 바 있다.
민주당의 복지 포퓰리즘을 비판해온 통합당이 김 위원장의 '약자와의 동행' 기조에 맞춰 나아가는 것이다.
일례로 지난 2011년 오세훈 당시 서울시장은 무상급식에 반대하며 시장직까지 걸고 주민투표를 강행했다가 결국 패배하면서 시장직을 내려놨다.
이를 계기로 보수진영은 "아이들 밥 안 주려고 시장직까지 걸었다"는 '낡은 꼰대' 이미지가 굳어져 논란이 일었고 오랜 기간 비난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김 위원장은 지난 5월 통합당 전국 조직위원장을 대상으로 한 강연에서도 이 사례를 언급하며 "정말 바보 같은 짓"이라고 지적했다. 당이 시대정신을 따라가지 못했다는 비판이었다.
김보영 교수는 "우리나라는 정책 생산이 국책연구소나 지방정부 출연기관, 정당 연구소 등 소속 조직을 위한 정책생산기구에 가깝다 보니 차별화된 대안 생산이 어렵고, 새롭게 생겨나는 민간 싱크탱크는 영세하고 역할이 제한적이다"며 "영국 보수당의 사례와 같이 작더라도 새로운 아이디어를 중심으로 한 움직임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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