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에 걸친 노력이 헛되지 않은 것 같아서 정말 뿌듯하죠. 이번 추석은 집안의 역사, 나의 뿌리를 한번 더 생각해볼 수 있어 더욱 값집니다."
1919년 독립만세운동에 나섰음에도 세월에 잊힌 경북 칠곡군 장곡 3.1만세운동을 주도했던 마을사람들이 무더기로 국가 유공자 서훈을 받게 돼 화제가 되고 있다.
지난해 집안의 독립운동사를 끈질기게 찾아 조부 장준식 선생의 독립유공자 서훈을 받은 장성기(64·대구 남구) 씨의 노력(매일신문 2019년 6월 6일 자 3면)이 또 다시 결실을 맺었다.

◆장곡 만세운동 펼친 25명 신규 독립유공자 포상
지난달 29일 추석을 앞두고 만난 장 씨는 국가보훈처의 독립유공자 공적 심사 결과 안내 공문 25장을 자랑스레 내보였다. 1919년 4월 9일부터 이틀간 경북 칠곡군 석적읍(성곡·중동) 일원에서 울려펴진 3·1만세운동에 참여한 인사 25명에 대한 정부 포상안이었다.
이들의 독립운동은 장 씨가 지난해 4월 대구보훈청에 독립 유공자 신청을 하면서 빛을 보게 됐다. 대다수가 인동 장씨 침류정 문중 사람들로 부자·형제·사촌지간 등 가까운 일가친척이다. 아울러 당시 함께 만세운동에 참여했지만 후손이 끊겨 잊힐 뻔했던 김득룡, 박팔문 선생에 대한 서훈도 이뤄져 의미가 깊다.
인동 장씨 침류정 문중이 360여 년간 대를 이어 살아온 칠곡군 석적읍(성곡·중동)은 과거 긴 골짜기에 9개 마을이 자리 잡아 긴실·장곡이라고도 불렸다. 일제시대 독립 만세운동 역시 장씨 집안 주도로 일어났지만 100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정작 장씨 집안 후손들 마저도 이 사실을 제대로 기억하고 있는 이들은 드물었다.
온 문중이 참가한 만세운동으로 집안 전체가 고초를 당한 아픔이 컸던 데다, 광복 5년만에 일어난 6·25전쟁 다부동전투로 장씨 집성촌이 초토화 되면서 이들의 만세운동도 함께 잊혔다.
장 씨는 지난 2018년 경북 칠곡군에서 열린 '장곡 3·1만세운동 재현 행사'에 참여한 것을 계기로 집안의 독립운동사를 찾아 나서게 됐다. 그는 "어렸을 때 조부로부터 만세운동을 했다는 말을 들은 기억은 있었지만, 막상 조부에게 독립유공자 서훈 등 아무 흔적이 없는 것에 의구심이 생겨 자료를 찾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잊혀진 역사의 흔적을 찾는데만 꼬박 1년이 넘게 걸렸다. 장 씨는 2018년 3월 광복회에 조부의 독립운동을 문의한 것을 시작으로 국가기록원, 독립운동사, 과거 형사사건부, 수형인명부, 판결문 등을 뒤지며 과거 기록을 찾는데 몰두 했다. 대구시립도서관을 문지방 닳듯 드나들며 발견한 독립운동사 사료집에 나온 장영조, 박팔문 2심 판결문이 단서가 됐다.
그는 장곡 3·1만세운동으로 태형 90대를 받은 박팔문 선생의 신문조서를 보다 조부인 고(故) 장준식 선생이 주동자로 기재돼 있는 것을 발견했다. 장 씨의 노력으로 조부는 지난해 3월 독립운동 100주년을 맞아 대통령 표창을 받기도 했다.
장 씨가 발견한 자료들에 따르면 당시 장곡 지역에서 만세운동을 한 72명 중 42명이 검거됐다. 대구지검과 대구지법은 1919년 4월30일부터 5월24일까지 37명을 대상으로 징역(8명), 태형(2명), 노역장 유치(1명), 불기소(26명) 처분을 내렸다.
장 씨는 이들의 형벌 기록, 고등경찰요사, 공훈록 등을 참고로 당시 만세운동에 참여한 30명의 이름과 나이를 파악했다. 인동 장씨 족보를 토대로 현재 산소위치, 후손 확인 등을 거쳐 30명의 가계도를 파악해 지난해 4월 독립유공자 신청을 했다.
장 씨는 "만세운동으로 체포된 사람 대다수가 인동 장씨였는데, 이 중 30명만 확인이 가능했다. 나머지 7명의 경우는 형사상 기록과 족보상 이름·나이가 조금씩 달라 포함시키지 못했다"면서 "성씨는 다르지만 한 동네에 살다가 만세운동에 참여한 이들, 형사처벌을 받은 박팔문(태형 90대)과 김득룡(징역 5개월) 선생도 유공자로 신청했다"고 설명했다.
국가보훈처는 지난달 이중 25명에 대해 독립유공을 인정해 대통령 표창을 수여하기로 결정했다.

◆미서훈 독립운동가, 독립운동가 집안 재조명돼야
정부는 지난해 3·1독립만세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주년을 맞아 잊혀진 독립운동가를 적극 발굴하고 있지만 긴 세월이 흐른 탓에 독립운동가를 찾는 것도, 이들을 찾았다 해도 그 후손을 수소문 하는 것 마저 쉽지 않은 실정이다. 실제로 장 씨가 개인적으로 파악한 독립운동가의 가계도는 정부 포상이 결정 후 포상전수 과정에서 포상을 받을 선순위 유족을 찾는 과정에도 큰 도움이 되기도 했다.
장 씨는 잊혀진 독립운동사에 대해 관심과, 새롭게 발견한 독립운동가들에 대해서도 기록과 흔적을 남겨 재조명하는 절차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6.25전쟁 당시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칠곡은 '호국보훈의 도시'인데 훨씬 이전에 독립만세운동이 벌어졌다는 사실은 그동안 거의 드러나지 못했다"며 "이번에 포상 수여가 결정된 분들까지 한 지역에서 모두 34명의 독립유공자가 나왔다. 경북도와 칠곡군 주도로 이들을 기억할 수 있는 기록과 공간을 조성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처럼 장 씨가 '기억'에 집중하는 이유는 본인이 직접 독립운동 흔적을 따라가며 기록과 자료의 중요성을 몸소 체험해서다. 아울러 이미 절손돼 포상을 받을 유족이 없는 2명의 독립운동인사를 보며 든 안타까움이 크기도 한 탓이다.

장 씨는 "격동의 근현대사 속에서 급속한 산업화를 거치며 오늘날 장곡일대는 예전 모습을 모두 잃어버렸다"며 "자랑스러운 역사임에도 대가 끊겨버려 영원히 잊혀버리는 것을 막아야 한다. 특히 독립운동의 흔적은 모두가 기억해 사라지지 않게 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정부 포상을 받지 못한 5명에 대해서도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들 모두 포상을 받은 이들과 가족관계로 같이 독립운동을 참여했으나 '참여여부 불분명', '독립 운동 이후 행적이상(친일단체 행동)' 등을 이유로 포상 대상에 포함되지 못했다.
장 씨는 "이들은 모두 가까운 친족이라 일본 경찰이 들이닥쳤을 때 피신을 돕기도 했을 것이다. 친일 등 다른 행동을 할 타당한 이유가 없지만 6·25전쟁을 거치며 마을 전체가 사라져 공적을 보완할 만한 자료를 찾을 수 없다"며 "역사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라도 기록과 자료는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장곡지역 만세운동은 "경북 독립운동사에도 수록된 역사적 사실이지만 참가자들의 가계도를 파악해 자세한 관계를 밝힌 것은 인동 장씨 문중이 처음"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한준호 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 학예연구부장은 "정부의 노력과 함께 경상북도에서도 3·1운동, 의병활동, 국외 지역에서의 독립운동 활동 등 지금껏 자세히 알려지지 않은 독립운동가의 흔적을 찾으려고 노력하고 있다"며 "칠곡은 아직 지자체 고유의 독립운동사 편찬은 없는데 개인이 아무런 도움 없이 직접 자료를 찾아 조사한 것은 잊힌 독립운동 역사를 발굴하는 업무에 본보기가 될 만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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