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광장] 객토(客土)와 글로벌 대구

김용락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KOFICE) 원장·시인

김용락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KOFICE) 원장·시인
김용락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KOFICE) 원장·시인

객토(客土)라는 낱말을 한자로 풀이해 본다면 손(님) '객'에 흙 '토'이니 '손님 흙'이라는 말이다. 어느 집에 식구가 아닌 바깥사람이 올 때 손님이라고 표현한다. 다시 말해 내부 구성원이 아닌 바깥사람, 객식구를 손님이라고 부른다. 마찬가지로 시골에서 농사짓는 논이나 밭에 본래부터 있던 흙이 아니라 외부에서 덧붙여진(지는) 흙을 객토라고 한다. 한마디로 손님 흙이라는 뜻이다.

고래로 우리 지역은 이 손님을 매우 정중하게 대우했다. '봉제사 접빈객'(奉祭祀 接賓客), 즉 조상의 제사를 잘 받들고 손님을 잘 대접하는 것이 으뜸가는 예의범절이요, 사람의 도리라고 생각했다. 예전에는 집에 손님이 오면 융숭하게 대접한 후 돌아갈 때는 여비까지 후하게 줘서 보내드렸다. 그러니 아침저녁으로 거지가 밥을 얻으러 와도 인상을 찌푸리지 않고 자기들이 먹는 밥상 못지않게 한 상 잘 차려 같은 마루에서 동석해서 먹거나 아니면 마루 아래 섬돌에서라도 편안하게 먹게 하는 대우는 했다.

왜 그랬을까? 거지들을 대접하는 건 인간에 대한 예의 때문이었을 것이다. 성리학에서도 '남을 불쌍히 여기는 타고난 착한 마음', 측은지심(惻隱之心)을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쳤으니까 사람들은 자기보다 못한 처지에 있는 거지들에게 측은지심을 가졌을 것이다. 이건 과거 전통적인 우리 사회가 가졌던 매우 귀중한 가치이자 덕목이었다고 볼 수 있다. 아마 이런 생각들이 발전해 근대에 와서 동학의 '인내천'(人乃天·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거대한 사상이 생겼는지도 모르겠다. 손님을 귀하게 대접하는 건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 손님을 통해 바깥세상의 소식도 듣고 견문도 넓히는, 즉 세상 돌아가는 사정을 알 수 있는 열린 통로로 생각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즉 개방된 사회로의 메신저가 바로 손님이었다.

객토는 학문적으로는 "농지 또는 농지가 될 토지에 흙을 넣어서 토층(土層)의 성질을 개선하고, 그 토지의 생산성을 높이고자 실시하는 일"이라고 정의되어 있고 "객토의 역사는 1429년에 편찬된 '농사직설'(農事直說)의 종도조(種稻條)에 '정월에 얼음이 풀리면 갈고, 거름을 넣거나 혹은 새 흙을 넣음이 또한 득이 된다'라는 구절로 보아 500∼600여 년 전부터 지력 증진 수단으로 실시해 온 것 같다"(네이버 지식백과)고 밝히고 있다.

내가 초등학교 다니던 1960년대 말에서 70년대 초쯤에 늦가을 나락 타작을 끝내고 나면 나는 리어카를 끌고 아버지는 지게를 지고 동네 야산 비탈이나 이웃 논에서 남는 흙을 퍼다 우리 논에 객토를 했던 기억이 있다. 그때 추위가 막 닥치던 때인데도 야산 비탈의 그 싱싱하고 풍성해 보이던 탐스럽던 흙에 대한 기억은 회갑을 지낸 지금도 내 마음을 설레고 따뜻하게 한다.

현재 고향 단촌에서 마늘과 벼농사를 짓고 있는 초등학교 친구에게 전화를 해 확인해 보니 1모작을 하는 논에는 12월이나 1월쯤 객토를 하고, 2모작을 하는 논에는 10월 말까지는 타작(추수)을 하고 곧이어 마늘을 심기 때문에 기간이 짧아 객토를 하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객토는 바깥 흙을 끌어와 농지의 흙을 좋게 만들어 생산성을 높이는 일이라고 한다. 한때 대구광역시의 시정 슬로건이 '컬러풀(colorful) 대구'였다. 굳이 우리말로 풀어보자면 '다양한 가치를 존중하는 대구'쯤이 될 것이다. 지심을 돋우기 위해 논밭에 객토를 하듯, 선진적인 대구의 정치사회 문화를 키우기 위해 폐쇄된 정신을 객토해야 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 바깥의 새로운 흙을 받아들이고, 열린 사회, 개방된 글로벌한 국제도시 대구로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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