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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칼럼]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의 1년

문재인 대통령.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 연합뉴스
정창룡 논설주간
정창룡 논설주간

2020년은 국가적으로 좋은 일이 하나도 없었던 해로 남을 듯하다. 추미애 법무부의 1월8일 검찰인사는 그 전조였다. 조국 전 법무부장관의 가족 비리를 수사하던 서울중앙지검장은 한직으로 밀려났다. 유재수 감찰무마 사건을 지휘하던 서울 동부지검장도 좌천됐다. '윤석열 사단 학살'이란 소문은 현실이 됐다. 8월6일 추미애 법무부장관의 두 번째 검사장급 인사는 '확인 사살'에 다름 아니었다. 검찰 내 소위 '빅4'라 불리는 요직을 호남이 독식했다. '친정부' 성향 평가를 받은 검사들은 승승장구했다. 윤 총장이 추천한 인사는 모조리 배제됐다. '학살을 넘어 전멸'이란 말이 나왔다.

'정치인' 추미애와 '검사' 윤석열은 1년 내내 충돌했다. 법치의 상징인 법무부가 법치 훼손 논란을 부르며 이토록 집요하게 검찰총장을 찍어내기 하려 든 것은 일찍이 경험하지 못한 일이다. 오죽하면 라임수사를 지휘하던 서울남부지검장은 "정치가 검찰을 덮었다"는 말을 남기고 검찰을 떠났다. 정권 관련 수사는 지지부진하거나 흐지부지됐다. 윤석열은 식물총장이 됐다. 그로도 부족해 끝내 정직 처리됐다. 그는 이제 공수처 수사 1호가 될 것이란 여당의 협박에 시달린다.

5월 8일엔 윤미향 사태가 또 국민들 속을 뒤집었다.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는 "30년 동안 속을 만큼 속았고 이용당할 만큼 당했다"고 폭로했다. 그래도 국회의원이 된 윤미향은 끄떡없다. 지난 12일 와인파티를 여는 사진을 SNS에 올렸다. 위안부 길원옥 할머니의 생신을 기리는 와인파티라고 했다. 하지만 길 할머니측은 연락을 받은 적도 없다고 일축했다. 6월 16일엔 북한은 개성공단 내 남북연락사무소를 폭파 해체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치적으로 내세우려던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마저 그렇게 물거품이 됐다.

무엇보다 지난 1년, 민주주의는 퇴보했다. 민주화 이후 독재란 말이 이처럼 공공연하게 회자된 적이 없었다. 4·15 총선에서 절대 다수 의석을 차지한 더불어민주당은 알렉시 토크빌이 말한 '다수의 폭정(tyranny of the majority)' 저주에 푹 빠졌다. 공수처 출범도 않고 3개 후속입법을 하는데 단 18분이 걸렸다. 이마저 연말엔 야당 비토권을 없애기 위해 또 개정했다. 민생이 걸린 임대차법, 종합부동산세법, 기업규제3법 등은 날치기로 통과됐다. 빠른 입법을 위해 야당의 필리버스터마저 강제 종결 처리하는 초유의 일이 벌어졌다. 초선 윤희숙 국민의힘 의원이 "누구에게 쫓기는 것처럼 논의 없이 마구 망치를 두들기는 모습"을 "얼마나 많이 봤는지 모른다"고 했을 정도다.

청와대와 국회, 검찰 등 권력의 핵심부가 아귀다툼을 하는 사이 민생은 피폐한 해였다. 집값과 전세값은 폭등했다. 세금이 덩달아 올랐다. 내가 집값 올려 달라 한 것도 아닌데 웬 세금 폭탄이냐는 아우성이 빗발친다. 집 없는 국민은 집값이 다락같이 올라 괴롭고, 집 가진 국민은 세금 부담이 두렵다. 올해 11월 취업자 수는 9개월 연속 감소했다. 청년층의 취업자 수, 고용률, 실업률 등 수치는 최악이다. 국채규모는 올들어 112조원이 늘었다. 나랏빚을 그리 내고도 경제성장률은 –1.1%로 곤두박질쳤다.

정부는 코로나를 탓한다. 하지만 코로나 이전에도 수출과 내수, 투자 등 우리나라 경기는 곤두박질치고 있었다. 올 들어 코로나라는 핑계거리가 하나 늘었을 뿐이다. 우리는 올해 봄 마스크대란을 경험했다. 마스크를 구하려는 행렬이 끝도 없이 늘어선 사진이 외신에 보도 될 정도였다. 하지만 그 고통을 국민에게 안기면서도 정부는 배우지 못했다. 오히려 선방했다고 자랑한다.

미국, 일본, EU 등 전 세계 30여 개국이 올해가 다가기 전 코로나 백신접종에 들어간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K방역 홍보에 들떠 백신을 제 때 확보하지 못했다. 이젠 선진국 제약사들의 선처만 바라야 하는 딱한 처지에 놓였다. 바야흐로 우리나라는 대유행의 새로운 고비에 들고 있다. 국민들은 이번에도 각자도생하는 것이 현명해 보인다.

좋은 일 하나 없이 역병의 창궐 속에 연말연시를 맞이하게 된 국민들에게 송구영신을 말하는 것이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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