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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도서관을 가다-경북대] 대학 도서관의 재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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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뚜기' '도자기' 사라지고 복합문화공간으로
1980년대 좋은 자리 맡으려 줄 세운 가방과 많은 학생들
디지털 시대 공부 방식 변화, 고서 전시·작가 초청 강연회 다채로운 역할

경북대도서관 전경
경북대도서관 전경

한 장의 사진을 본다. 경북대 도서관 앞에 조성된 둥근 화단, 거기에 학생들이 앉거나 서서 책을 보고, 책가방은 꼬리에 꼬리를 문채 일렬종대로 놓여 있다. 내가 대학을 다녔던 1980년대 도서관의 새벽 풍경이다. 오늘날에는 도무지 볼 수가 없는 광경이지만, 도서관 열람실에 좋은 자리를 먼저 잡기 위하여 새벽부터 나와 가방으로 줄을 세워둔 것이다, 어떤 학생은 친구에게 가방을 맡기고 근처에 있는 식당으로 아침밥을 먹으러 가기도 했다.

시간에 맞추어 자신의 가방 곁으로 다시 와서 도서관 문이 열리기를 기다렸다가, 문이 열리자마자 뛰어 들어가 열람석의 구석구석으로 밀물처럼 스며든다. 어떤 학생은 자신의 가방에서 여러 권의 책을 꺼내 빈 책상에 놓아두기도 한다. 이때 생긴 말이 '도자기', 도서관에 자리 잡아주는 자기라는 뜻이다. 자리를 잡지 못해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메뚜기'도 있었다.

나는 공부를 하다가 집중이 잘 되지 않거나 혹 졸리기라도 하면 서가로 갔다. 주로 800번 단위의 문학 서가와 100번 단위의 철학 서가였다. 어떨 땐 이런저런 책들을 뒤적거리기도 하고, 어떨 땐 책 한 권을 빼어들고 나도 모르게 반나절을 쪼그리고 앉아 읽기도 했다. 노자와 공자의 가르침에 따라 자유과 질서가 무엇인지를 어렴풋하게나마 깨달았고, 매월당 김시습의 치열할 삶을 마주할 때는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석박사 논문을 쓸 때는 많은 분량의 복사가 필요했다. 3층 복사실로 가면 여러 가지 책을 끌어안고 자신의 순서를 기다리는 학생들을 종종 만난다. 복사실에는 고무 골무를 낀 여직원들이 여럿 있었으며, 그들은 무표정한 얼굴로 갈피와 갈피에 끼워둔 종이쪽지를 빼내며 지식을 복사해주었다. 때론 학생들의 요청에 따라 제본을 하기도 했다. 제본 날짜를 조금이라도 앞당기기 위하여 그 여직원과 신경전을 벌이기도 했다.

나는 경북대 도서관장이 되어 다시 서가 사이에 섰다. 그동안 도서관 문화도 많이 바뀌었다. 규모는 말할 것도 없고, 장서량도 350만권에 육박한다. 전국 모든 대학 중 서울대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수치다. 도서관 1층 로비는 오늘날의 청년문화에 맞게 하나의 까페식 문화공간으로 변하였다. 여기서 고서나 유교책판 등을 전시하기도 하고, 베스트셀러 작가를 초청하여 강연회를 열기도 한다. 헤드셋을 끼고 영화를 감상할 수도 있다. 그야말로 책과 함께 하는 복합문화공간이다.

디지털 시대를 맞아 공부의 방식이 완전히 바뀌었다. 자료는 인터넷으로 다운을 받아 활용하고, 국외도서도 주문만 하면 손쉽게 구할 수 있다. 국내 도서관에 있는 다른 자료들도 인터넷으로 연결되어 있어 여기에 없으면 저기서 찾을 수 있다. 나의 기억 한 켠에 있는 치열했던 도서관의 새벽 전투, 그리고 도자기와 메뚜기도 사라진 지 이미 오래다.

코로나 시대를 맞아 대학 도서관을 다시 생각한다. 우리는 여기서 경쟁과 속도를 넘어, 내면으로부터 솟아오르는 청량수를 만날 수 있다. 아름다운 거리의 가치를 서가 사이에서 느낄 수도 있다. 오늘부터 우리는 매일신문 '대학 도서관을 가다-경북대' 코너에서 경북대 도서관과 그 문화를 이야기할 것이다. 다양한 필자들이 형식과 내용에 구애되지 않고, 그들의 독서와 도서관 경험을 심각하면서도 유쾌하게 진행할 것이다.

정우락 경북대 교수·도서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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