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교향악이 울려 퍼지는 청라언덕 위에 백합 필적에…"
누구든 이 노래를 한 번쯤 불러보았을 것이다. 이 노래는 중학교 음악 교과서가 개정될 때마다 빠지지 않고 실린 우리나라 최초 가곡이다. 노래 첫 부분이 '봄'으로 시작하는 가사로 인해 새 학기를 맞는 봄에 부르도록 앞쪽에 실려있다. 이 곡은 이은상 작사, 박태준 작곡의 '사우(思友)'로 우리말인 '동무생각'으로 알려져 있다.
필자는 중학교 시절 이 곡을 부르면서 제목이 '동무생각'이니 동성 간 우정을 표현하는 것이겠지 하면서 불렀다. 세월이 지난 후 이 곡이 동성이 아닌 이성 간의 그리움을 표현한 것임을 알고 찬찬히 가사를 훑어보았다.
"나는 흰 나리꽃 향기 맡으며 너를 위해 노래, 노래 부른다. 청라언덕과 같은 내 맘에 백합 같은 내 동무야, 네가 내게서 피어날 적에 모든 슬픔이 사라진다."
이 얼마나 연인에 대한 애틋한 사랑의 표현인가. 이 곡을 작곡한 박태준은 계성중학교 시절 대구 남성로에서 청라언덕을 넘어 등하교했다. 때마침 백합처럼 고운 얼굴에 흰 저고리와 검정 치마(당시 교복)를 입은 신명여학교의 한 여학생이 눈에 띄었다. 하지만 내성적인 성격 탓에 박태준은 말도 못 붙여 보고 졸업했다. 이후 마산 창신중학교 교사로 발령을 받았는데 그곳에는 비슷한 연배의 이은상이 근무하고 있었다.
이은상은 박태준에게 곡을 붙여 보라며 박태준의 짝사랑 이야기를 바탕으로 사계절로 된 시를 써주었다. 박태준이 쓴 곡은 전반부에 여유 있게 부르다가 "청라언덕과 같은 내 맘에…"부터 재촉하듯 8분의 9박으로 변박되어 절정을 이룬다. 감출 수 없는 사랑의 감정이 곡에 잘 반영되었다. 만년의 박태준은 당시 이 곡을 작곡할 때 어떻게 그런 아이디어가 나왔는지 본인도 놀랐다고 회고했다.
한편 지난해 음악계는 한국가곡 100주년을 기념했다. 홍난파의 '봉선화' 탄생을 기점으로 한 것이었다. 그러나 '봉선화'의 작곡 과정을 보면 수긍하기 어렵다. 홍난파는 자신이 쓴 단편소설 '처녀혼' 서두에 1920년 작곡한 피아노곡인 '애수(哀愁)'의 악보를 실었다. 이후 1925년 피아니스트 김형준이 나라없는 신세를 봉선화에 비유하여 '애수'에 3절의 가사를 써넣고 제목을 '봉선화'로 바꾸었다. 그리고 홍난파는 1926년 이 악보를 '세계명작가곡선집'에 실었다.
오늘날 '봉선화'의 작곡 시기를 '애수'의 작곡 연도인 1920년으로 보고 있으나 '애수'가 피아노곡이기 때문에 그렇게 보는 것은 맞지 않다. 가곡은 반드시 가사가 수반되어야 하므로 가곡으로서 '봉선화'의 작곡 연도는 1925년이 된다.
따라서 최초 가곡은 1922년 박태준이 작곡한 '동무생각'이다. 시급히 제자리를 되찾아야 하겠다. 기회가 있으면 계산오거리 근처 청라언덕에 올라가 보자. 그곳에는 '동무생각' 노래비가 있다. 대구 출신 작곡가의 곡으로 한국 최초 가곡이라는 자긍심을 가지고 '동무생각'을 크게 한번 불러보자.
유대안 대구합창연합회 회장
댓글 많은 뉴스
나경원 "李 장남 결혼, 비공개라며 계좌는 왜?…위선·기만"
이 대통령 지지율 58.6%…부정 평가 34.2%
"재산 70억 주진우가 2억 김민석 심판?…자신 있나" 與박선원 반박
트럼프 조기 귀국에 한미 정상회담 불발…"美측서 양해"
김민석 "벌거벗겨진 것 같다는 아내, 눈에 실핏줄 터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