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토지주택공사(LH) 투기 의혹'이 연일 언론을 장식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 정세균 국무총리 등이 입을 모아 발본색원, 패가망신을 외치고 있다.
문 대통령이 지난 10일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며 격노했다는 소식은 LH 직원들의 신도시 투기 의혹에 대한 첫 메시지가 나온 지 여섯 번째 언급이었다. 같은 사안에 대해 거의 매일 대통령의 지시나 언급이 있는 것 역시 드문 일이다. 그만큼 국민의 분노 정서를 자극하는 일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미니 대선이라 불리는 서울, 부산 시장 선거를 앞둔 다급한 상황도 의식한 행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급해도 문제의 본질은 분명히 해야 할 필요가 있다. 국민은 단순히 투기에 분노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흔히 투기는 필요악이라 한다. 투자와 투기 모두 이익을 추구하지만, 투자는 생산 활동을 통한 이익을 추구하는 반면 투기는 생산 활동과 관계없는 이익을 추구한다고 한다. 투자는 위험부담을 최소화하는 안정성을 전제로 하지만, 투기는 불확실성을 내포한 위험부담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설명도 있다.
부동산을 사면서 생산 활동을 할 목적이면 투자, 시세 차익만이 목적이면 투기라고 보기도 한다. 어떻게 설명하든 종이 한 장 차이인 투자와 투기를 구분하는 일은 쉽지 않다. 투기가 좋은 일은 아니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쩔 수 없는 일이고, 중요한 것은 투기가 범죄는 아니라는 사실이다.
한국토지주택공사법은 공사의 임원 또는 직원이 비밀을 누설하거나 미공개 정보를 이용하는 행위를 금지한다. "직무상 알게 된 비밀을 누설하거나 도용을 금지(제22조)"하고, "공개되지 아니한 업무와 관련된 정보를 이용하여 공사가 공급하는 주택이나 토지 등을 자기 또는 제3자가 공급받게 하는 행위를 금지(제26조)"하는 규정이다. 벌칙도 상당하다.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22조 위반),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26조 위반)에 처한다. 부패방지법에도 유사한 규정이 있다.
국민이 분노하는 것은 바로 이 점이다. 단순 투기가 아니라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지적처럼 "공적인 정보를 도둑질한 망국 범죄"이기 때문이다. 광명·시흥에서만 자기 이름으로 땅을 산 LH 직원이 20여 명이라고 한다. 차명이 아니라 단순 서류 대조만 해도 드러날 수 있는 본인 명의 투자를 한 직원들은 믿는 구석이 있었을 게 분명하다. 땅 매매가 지금까지 문제 된 적이 없었다는 사실이 직원들의 배포를 키웠을 것이다. '사내 복지'라는 LH 직원의 언급도 있지 않았는가. 설사 문제 되어도 업무 관련 정보가 아니라고 하면 빠져나갈 수 있거나, 땅으로 얻는 이익이 정년까지 근무하는 것보다 훨씬 크다는 계산도 섰을 것이다. 국민의 더 큰 분노가 향하는 지점이다.
본질이 범죄라면 대책 역시 그에 걸맞은 것이어야 한다. 정부합동조사단 등 소리만 요란한 채 변죽을 울리는 것은 국민의 분노를 키울 뿐이다. 보궐선거를 의식해서 문제가 더 커지지 않는 데 주력해서도 안 된다. 그야말로 발본색원을 위해서는 국가 수사기관의 역량을 총동원한 제대로 된 수사가 있어야 한다. 경찰을 믿지 못한다고 단정할 필요도 없지만 검찰 배제를 고집할 이유도 없다.
더불어민주당의 국회의원 전수조사 주장이 이른바 물타기라 치자.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공무원, 지방의원, 국회의원 등도 본인이나 가족이 문제 된 곳에 땅을 산 기록이 나오고 있다. 범죄 수사는 수사대로 진행하면서 이들을 포함, 정부 고위직 땅 투기 의혹을 전수조사할 필요가 있다. 김영삼 정부 때 재산 공개 파동이 공직자들의 청렴성을 한 단계 높이고 공직자 재산공개법으로 이어진 경험이 있다.
이번 파문이 그와 같은 과정을 거쳐 이해충돌방지법 제정까지 이어진다면 망외의 소득일 것이다. "문재인 정부 도덕성이 과거 정부보다 나빠졌다"는 응답이 45.2%, "비슷하다"는 응답이 15.3%라는 한 여론조사(10일, 알앤써치)가 있었다. 선거를 의식하지 않고, 진영의 유불리를 의식하지 않고 망국의 범죄를 뿌리째 뽑아낸다면 문 대통령은 국민의 박수 속에 퇴임할 수도 있을 것이다. 거대 여당의 이해충돌방지법 전격 입법 작전 역시 바로 이런 데 쓰여야 한다. 물론 수사 이후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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