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종문의 한시산책] 진짜와 가짜 - 일연

로봇
mWiz 이 기사 포인트

가짜 색이 진짜 색을 마구 어지럽게 하고 紅紫紛紛幾亂朱

뭐라고! 고기 눈을 구슬이라 속인다고? 堪嗟魚目誑愚夫

거사님이 손가락을 탁 퉁기지 않았다면 不因居士輕彈指

하고 많은 상자 속에 옥 같은 돌 담았겠지 多小巾箱襲碔砆

어느 해 스승의 날에 한 졸업생이 가짜 선생을 진짜 스승으로 착각을 했는지 야자 화분 하나를 보내왔다. 딱 보는 순간 가짜 같았다. 진짜는 저리 가라는, 진짜보다도 더 진짜 같은 가짜 말이다. 그런데 다시 보니 잎새 끝이 말라있는 데가 있어, 어라? 진짠가 싶어 손톱으로 살짝 째비봤다. 그래도 도무지 알 수가 없어서 더러 물을 주곤 했다.

일 년을 물을 줘도 새 잎새도 아니 나고 말랐던 잎새 끝이 더 마르는 법도 없어, 가짜야, 가짜일 거야, 하면서도 물을 줬다. 하지만 삼 년 뒤에 진짜임이 드러났다. 그 모질고 혹독한 수모 더는 참지 못했던가. 어느 날 혀를 깨물고 죽어버린 것이다. 그러고 보면, 진짜와 가짜를 구별하는 것은 진짜 어렵다.

김유신이 한 늙은 거사와 교유가 두터웠다. 그때 유신의 한 친척이 오래도록 모진 병을 앓고 있었으므로 거사를 보내어 치료하게 했다. 마침 한 승려가 거사를 보고 거만스럽게 깔보며 말했다.

"너 주제에 무슨 병을 고쳐? 나의 신통력을 한 번 봐라."

말을 마친 그가 주문을 외우면서 향을 피우니, 오색구름이 머리 위에서 감돌더니 하늘의 꽃이 흩어져서 펄펄 떨어졌다. 거사가 말했다.

"스님의 신통력은 불가사의합니다만, 저도 변변찮은 재주가 있으니 시험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거사가 손가락을 한 번 퉁겨 소리를 내자 그 승려가 공중에 거꾸로 튕겨 나갔다가, 한참 뒤에 물구나무선 채 서서히 내려오더니 머리가 땅에 박혀 말뚝을 박아놓듯 우뚝했다. 옆에 있던 사람들이 밀고 당겨봐도 꼼짝도 하지 않았다. 거사가 나가버리니, 스님은 거꾸로 박힌 채로 새벽까지 그렇게 서 있었다.

삼국유사에 수록되어있는 이야기인데, 인용한 시는 그 이야기 뒤에 첨부한 저자 일연의 작품이다. 붉을 홍(紅)과 붉을 자(紫), 붉을 주(朱)는 모두 붉은색이지만, 그 가운데 진짜는 붉을 주(朱) 하나다. 그런데 사이비들이 마구 판을 치니 진짜가 설 자리가 없다.

그런가 하면 물고기의 눈을 구슬로 팔아먹는 가당찮은 놈들도 있다. 거사가 손가락을 한번 탁 퉁겨서 진짜와 가짜를 가려주지 않았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속아서 옥 비슷한 돌을 진짜 옥으로 착각하고 소중하게 갈무리를 했겠는가. 진짜와 가짜를 구별하는 것이 진짜 어려운 일이구나, 아아!

불과 얼마 뒤에 나라의 명운을 가를 수도 있는 보궐선거가 실시된다. 후보들이 서로서로 상대방을 향해 더 나쁜 놈이라고 손가락질을 해대고 있으니, 까마귀의 암수를 누가 알랴? 그래도 그 가운데 하나라도 진짜가 있었으면 정말 좋겠는데, 혹시 둘 다 가짜일까 봐 정말이지 진짜 걱정이다.

이종문
이종문

이종문 시조시인(계명대 한문교육과 명예교수)

최신 기사

mWiz
1800
AI 뉴스브리핑
정치 경제 사회 국제
오는 23일 이재명 대통령의 국정조사 추진을 위한 의원 모임인 '공취모'가 출범하는 가운데, 민주당 내부의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특히, 1...
대구에서는 자산·소득 양극화에 따라 소비가 초저가와 초고가 제품으로 양분되는 흐름이 뚜렷해지며, '다이소'가 매장 수를 늘리고 성장세를 보이...
서울행정법원은 학부모 A씨가 초등학생 자녀의 수행평가에 이의를 제기하며 교사에게 인신공격적 표현을 사용한 행위가 교육활동 침해에 해당한다고 ...
브리핑 데이터를 준비중입니다..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