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사투리와 사람들
2. 사투리 번역기 개발 옥철영교수
'인공지능(AI)냉장고와 스마트폰이 사투리를 알아듣는 시대가 올 것입니다'
울산대 옥철영 IT융합부 교수는 기계들이 사투리를 척척 알아듣는 세상을 꿈꾸며 연구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기계를 향해 '정지에 가서 정구지 좀 가 와라'라고 말하면 기계가 '부엌에 가서 부추 좀 가져 오너라'로 번역해서 반응토록 만드는 것이다. 지금은 명사 부사 용언 정도의 사투리를 알아듣는 수준이지만 문장전체를 번역하는 단계까지 발전시킬 계획이다.
▶스마트 폰이 사투리를 알아듣고 작동하는 세상이 가능할까요?
- 이미 '정지'는 '부엌'으로 '정구지'는 '부추'로 변환하는 수준까지 왔습니다. 앞으로 더 많은 사투리 말뭉치와 음성인식기술(STT)을 추가해 사투리 음성까지 표준어로 변환하는 기술이 된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입니다. 지난해 국어정보처리시스템 경진대회에서 사투리 변역기라고 할 수 있는 이 변환프로그램으로 상을 받았습니다.
▶공학도가 사투리에 대한 관심을 갖는다는 것이 약간 낯설게 느껴집니다.
-공학도가 문법을 익히고 언어학도가 프로그래밍을 익혀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고 할까요. 인공지능 완성을 위해 국어학과 공학이 만나야 되는 시기가 왔습니다. 이런 점에서 언어가 가지는 가치는 아주 소중한 것입니다.

▶표준말이 아닌 사투리에 관심을 가지게 된 동기가 있습니까
-지역 말인 사투리가 없어지면 투박하고 정겨운 지역의 문화가 없어집니다. 지역사람들의 역사도 사라지는 것이고요. 공학하는 사람으로서 이런 사투리를 보존하고 생활에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발전시키고 싶었습니다.
▶울산이 고향인가요
-아닙니다. 부모님은 거제도분이시고, 저는 부산에서 태어났습니다. 1984년 울산대학으로 와서 지금까지 계속 여기서 일하고 있습니다.
▶기계와 대화를 목표로 30년 이상 힘든 길을 걸어왔습니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서울대 컴퓨터공학과 1회 입니다. 개강 모임 때 교수님이 '너는 무엇을 할 것이냐'를 물어본 적이 있었어요. 그 당시 영화 스타워즈가 인기였는데 우주선에 있는 컴퓨터와 선장이 대화하는 장면을 보면서, 나도 기계와 인간이 말을 나누는 프로그램을 개발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때부터 시작된 것이라 할 수 있겠네요.
▶공대교수로는 드물게 2016년 한글날 정부가 주는 근정포장을 수상했습니다.
-우리말의 정보화와 세계화를 위해 한국어 '어휘지도'를 구축한 업적으로 수상했지요. 오랫동안 한 길만 걸어온 것에 대한 보상과 인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어휘지도'가 무엇입니까? 쉽게 설명해주십시오
-어휘지도는 각 단어는 개념을 가지고 있고 그 개념들은 다른 단어와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서 출발합니다. 단어의 반대말은 무엇이고 유사한 말은 무엇인지 또 상위어와 하위어가 무엇인지 개념체계를 제시한 것이지요. 예를들면 '눈'이라는 단어는 여러 가지 뜻이 있습니다. 뒤에 오는 말과 반대어를 달아놓으면 정확한 번역이 가능하겠지요. '눈'이라는 단어 뒤에 '뜨다' '감다'라는 말이 온다면 기계는 알아서 'eye'로 변역하고, '내리다'란 단어가 뒤에 온다면 'snow'라고 번역하게 됩니다. 단어의 앞 뒤 상하의 관계지도를 통해 그 말의 뜻을 명확하게 해주는 프로그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역대학에서 이런 연구가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지방대학이어서 어려움은 없었는지요?
-지방에도 훌륭한 인재가 많습니다. 실제로 울산대학의 제자들은 자질이 뛰어납니다. 학생들의 노력이 있어 지금의 성과도 이루어진 것이고요. 서울에 있었다면 각종 프로그램등을 하느라 오히려 연구에 집중할 수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지역대학의 뚝심과 우수한 인재만 있다면 연구를 더 지속적으로 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연구한 자료들을 무료로 사용토록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연구를 위해서라면 저의 모든 자료를 무료로 제공하고 있습니다. 제 연구를 바탕으로 더 많은 연구가 보다 쉽고 빠르게 이루어지길 바라기 때문이지요. 단, 기업에서 필요한 것들은 돈을 받고 제공하고 있습니다.
▶연구를 하면서 가장 아쉬운 점이 있다면
-지금까지 공학적인 입장에서 연구했지만 국어학의 입장에서 보면 굉장히 어설퍼 보일 것입니다. 국어학을 전공한 교수분들과 제가 개발한 시스템이 합쳐지면 지금까지 한 연구들의 부가가치가 좀 더 높아지지 않을까요? 하루빨리 폐쇄적인 연구풍토에서 벗어나 열린 분위기로 나아갔으면 좋겠습니다.
▶공과대학 교수의 책꽂이에 각종 국어사전과 한글에 관련된 책, 소설등이 꽂혀있는 것이 재미있습니다.
-박경리의 '토지'는 팔도의 사투리들이 모여 있고 어미의 변화가 아주 다양해 살아있는 언어의 보고(寶庫)입니다. 주로 박경리의 '토지'나 김주영의 '객주'등에 많이 의지해서 말뭉치를 만들고 있습니다.
▶학자로서 바람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저는 한 길만 걸었습니다. 누가 알아주지 않는 길이었지만 걷다보니 큰 길이 되었고 끝까지 걷고 싶은 길이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저의 연구가 날개를 다는 일이었다면 이제는 꼬리가 있어 방향을 잡았으면 합니다. 보다 큰 그림으로 넓고 깊게 나아가야하기 때문입니다. 더 늦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2년 뒤, 은퇴하면 무얼 하고 싶습니까?
-지금하고 있는 데이터 처리를 꾸준히 할 생각입니다. 말뭉치의 오류를 수정하고 말뭉치를 만드는 일에 매진할 계획입니다. 새로운 단어가 만들어지면 어휘의 망에 집어넣는 작업도 해야합니다. 기타도 배우고 싶고 여행도 실컷 다니고 싶습니다.
글· 사진 김순재 계명대 산학인재원 교수 sjkimforce@naver.com
이 기사는 계명대학교와 교육부가 링크사업으로 지역사랑과 혁신을 위해 제작했습니다.
◆다시, 사투리 연재 순서
1.왜 다시, 사투리 인가
2.예술 속 사투리
3.사투리와 사람들
4.외국의 사투리 보존과 현황
5.대담
◆사투리 연재 자문단
김주영 소설가
안도현 시인
이상규 전 국립국어원장
김동욱 계명대학교 교수
백가흠 계명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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