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상헌 기자의 C'est la vie] 은장권 '함께하는 세상' 이사장

"이웃사랑이 더 나은 세상 만들지요"…글로벌 자비공동체 목표로 다양한 사업 펼쳐
2016년부터 자리이타(自利利他) 꿈꾸는 불교 봉사단체 이끌어
첫 해외 교육지원 몽골 유치원 건립…대구 이곡동에 스리랑카 사원 개원
이주노동자 지원·상담활동에 나서…봉사·장학금 기탁·복지시설 후원도

(사)함께하는세상 은장권 이사장이 부처님 오신 날을 앞두고 지난 18일 대구 이곡동에 있는 스리랑카 사원을 찾았다. 우태욱 기자 woo@imaeil.com
(사)함께하는세상 은장권 이사장이 부처님 오신 날을 앞두고 지난 18일 대구 이곡동에 있는 스리랑카 사원을 찾았다. 우태욱 기자 woo@imaeil.com

자리이타(自利利他)는 자신을 이롭게 할 뿐 아니라 남을 위하는 마음을 일컫는 불교 용어다. 하지만 스스로 깨달음을 구하면서 중생까지 제도(濟度)한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오히려 인간 본성에 회의감을 갖게 하는 인면수심(人面獸心)의 사건·사고가 넘쳐나는 게 우리 일상이다.

사단법인 '함께하는 세상'(대구시 남구 봉덕로 54, 053-582-0757)은 부처님처럼 자리이타를 실천하려는 봉사단체다. 100여 명의 회원 가운데에는 불교 신자가 아닌 이들도 있다. 그저 이웃에 대한 더 많은 관심과 사랑이 더 나은 세상을 만든다고 믿는 평범한 이들의 모임이다.

대구에서 제조업체를 운영하는 은장권(68) 씨는 이 단체의 산증인이다. 2007년 출범 때 이사로 참여한 그는 2012년 사단법인 설립 당시 회장을 역임했고, 2016년부터는 동화사 주지를 지낸 지성 스님의 뒤를 이어 이사장을 맡고 있다. 물론 대학생 시절부터 심취했던 불법(佛法) 공부가 인연이 됐다.

"불교 동아리 활동은 열심히 했지만 부끄럽게도 봉사의 참맛은 직장에서 퇴직한 뒤에 알게 됐습니다. 혼자보다는 여럿이 함께 해야 파급력이 커지는 당연한 이치를 그제서야 깨친 셈이죠. 물방울이 모여 강물이 되고, 강물이 모여 바다가 되듯 개개인의 소중한 나눔이 모이면 훨씬 많은 일을 할 수가 있습니다."

원효 대사는 '심생즉 종종법생 심멸즉 종종법멸'(心生卽 種種法生 心滅卽 種種法滅)이란 큰 가르침을 남겼다. 마음이 생기면 모든 것이 생기고, 마음이 사라지면 모든 것이 사라진다는 뜻이다. 이 경구를 무척 좋아한다는 그의 봉사도 회원들과 함께하면서 점점 활동 영역을 넓혀갔다.

몽골을 대표하는 사찰인 간단사 스님들의 동화사 방문을 계기로 만들어진 '한·몽 국제교류협회'가 모태인 만큼 '함께하는 세상'은 글로벌 자비공동체를 목표로 다양한 사업을 펼치고 있다. 첫 해외 교육지원사업으로 19만 달러를 들여 추진한 몽골 유치원 건립이 대표적이다.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인 유치원은 공사 3년 만인 2009년 완공됐다.

대구 달서구 이곡동에는 2008년 스리랑카 사원을 개원했다. 약 1천500명에 이르는 대구 거주 스리랑카인 등 동남아에서 온 이주노동자들의 종교활동은 물론 사랑방 역할을 한다. 매년 한 차례 남방불교 최대 행사인 '카티나 핀카마'(Katina Pinkama) 행사를 열고 있는 '함께하는 세상'은 2018년 스리랑카 독립 70주년 기념행사를 대구에서 개최하기도 했다.

이주노동자들을 위한 지원·상담활동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스리랑카 사원과 같은 건물에 있는 '대구마하이주민센터'는 언어가 통하지 않아 어려움을 겪는 이주노동자의 임금 체불, 산업 재해, 의료 고민을 도와준다. 또 이주민과 함께 하는 한여름 영화축제, 뮤직 페스티벌 같은 문화행사를 마련해 이국만리에서의 외로움도 달래주고 있다.

"코로나19 영향으로 저희가 그동안 오랫동안 추진해온 국제 교류행사가 여의치 않아 상당히 아쉽습니다. 팬데믹 이전에는 최대 3개월까지 단기 숙식도 제공했었는데 요즘은 만나기조차 쉽지 않거든요. 아무쪼록 코로나19 상황이 하루 빨리 끝나 예전처럼 좋은 이웃들과 웃으며 지내는 시간이 더 많아지기만 바랍니다."

군위군 소보면이 고향인 이사장은 개인으로서도 왕성한 봉사활동을 펼쳐 우리 사회를 더욱 따뜻하게 만들고 있다. 지난 3월에는 2015년에 이어 두 번째로 칠곡 경북대병원에 대구 출신 서양화가인 이준절 화백의 작품을 기증했다. 이 병원에 있는 대구불교호스피스센터(불자 호스피스 봉사자들의 모임)의 초대 센터장을 맡으면서 인연을 맺었던 암 환우들이 그림을 통해 용기와 희망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에서였다.

그는 7년 전 먼저 세상을 떠난 부인의 장례 때는 부조금 일부를 고인의 모교인 대구여고에 장학금으로 기탁했다. 또 고인과 같은 이름을 쓰는 한 복지시설에는 매년 한 차례씩 가족들과 함께 찾아 후원물품을 전달하고 있다. 우연히 길을 가다 마주치는 어려운 이웃들도 그냥 보내는 법이 없다. 그는 영리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 사회복지시설을 운영하는 게 마지막 꿈이라고 귀띔했다.

"다른 분들도 마찬가지이겠지만 봉사는 대가를 바라고 하는 행위가 절대 아닙니다. 나누면서 느끼는 기쁨은 실천해본 분들만 아시죠. 자비는 부처님이 주시는 게 아니라 자신이 베풀어야 하는 것이라 믿습니다. 불가에서 말하는 보시(布施)에는 꼭 재물 기부만 있는 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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