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서 짧은 기간 동안 필자를 지도했던 노(老)교수는 30세 정도 나이 차가 나는 첼리스트와 친구였다. 이 첼리스트는 교수께서 재직하고 있는 대학의 전문연주자 과정에서 공부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주말이면 만나서 같이 식사도 하며 음악적 의견도 주고받는 사이였다.
시간이 좀 지나 첼리스트가 졸업시험을 치르게 되었는데 공교롭게도 이 노교수께서 첼리스트의 시험 심사위원으로 선정되었다. 우리나라 같으면 심사위원으로서 결격사유가 충분하지만 서구에서는 서로의 친분관계가 일에 있어서 고려사항이 되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 독일에서 전문연주자 과정의 졸업시험 심사위원으로는 전공지도 교수와 작곡가 그리고 오케스트라 지휘자가 반드시 포함되는 것이 상식이다.
놀라운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 이 노교수가 6~7명의 심사위원 중 유일하게 이 첼리스트 친구에게 낙제점을 주었다. 다른 동료 교수들이 놀라서 노교수께 "이 사람은 당신의 친구가 아니냐? 그냥 졸업을 시키자"라고 권유하였다. 그러나 그는 다른 동료 교수들에게 오히려 화를 내면서 "당신들은 이 친구가 사회에 나가서 솔리스트로 활동할 수 있는 준비가 충분히 되었다고 확신할 수 있습니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라고 단호한 태도를 견지했다.
그리고 "이 사람은 친구인 나를 실망하게 하였으니 더더욱 그의 졸업을 허락할 수 없습니다"라고 하였다. 그래서 첼리스트는 1년을 더 공부한 후에야 졸업을 할 수 있었다. 더 놀라운 사실은 이 일이 있은 후에도 두 사람의 친구관계는 더 돈독하게 유지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에센(Essen)에서 활동하는 한 작곡가 친구가 있었다. 이 친구는 자신이 주도하는 한 현대음악축제의 감독이었다. 이 친구는 에센 국립음대에 재직하는 전자음악 전공교수를 개인적으로 무척 싫어하였다. 그런데 놀랍게도 한 해는 3일간 진행되는 자신의 현대음악축제 2일차 저녁 연주회 프로그램을 완전히 이 전자음악 전공교수의 작품으로만 구성하였다.
사실 2일차 저녁 프로그램은 이 축제의 핵심 프로그램이라 할 수 있다. 한국인으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아서 "저 친구는 평소에 네가 많이 싫어하는 사람이 아니냐?"라며 이해가 잘되지 않는 행동이라고 하였더니 이 친구는 오히려 정색을 하며 "무엇이 그리 이해가 안 되니? 저 친구가 작품을 썼으니 당연히 연주할 기회를 주어야 되지 않겠어?"라며 개인적인 관계가 음악제 참여를 제재할 이유가 될 수 없다고 하였다.
서로 생각이 맞지 않는 사람들끼리 토론장에서 살벌하게, 격한 토론을 하다가 휴식시간이면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느냐는 듯이 같이 농담을 하며 커피를 마시는 장면이 그 사회에서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들이었지만 필자에게는 무척 충격적인 사실이었다. 처음에는 이러한 그들이 비인간적으로 느껴지기도 했었다.
그러나 공사(公私)를 엄격하게 구분하는 문화가 그들만의 독특한 선진사회를 견인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당연히 우리에게도 그들과 비교할 수 없는 장점들이 많지만 그들의 이런 사고에 부러움도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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