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서 김억의 '해파리의 노래'는 1923년 조선도서주식회사에서 발행한 개인 창작 시집이다. 이 책은 자유시로 쓴 최초의 개인 창작 시집이라는 역사적 의미도 있지만 1920년대 초 신교육을 한 식민지 조선 청년의 의식구조를 엿볼 수 있는 좋은 책이다. 경북대 도서관이 이 책의 영인본(1975년)을 구비하고 있는 것은 무척 다행이다.
일반적으로 1910년대에 일본에 유학하여 신교육을 받은 사람들은 우리나라 사람으로서 서구적 교육을 해외에 나가서 받은 1세대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이 해외에 나가서 서구적 교육을 받을 때는 포부도 컸다.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무엇인가 큰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았고 그것을 계기로 개인적 입신영달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어린 나이에 먼 타국 생활을 하면서도 미래에 대한 꿈과 희망으로 부풀어 있었다.
그러나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순간 그들은 무기력함을 느낀다. 식민지 백성이라는 현실을 온몸으로 느낀다.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 그것의 첫 체험이 실업이다. 이러한 식민지 신지식인의 의식구조를 우리들은 주요한의 시에서 잘 볼 수 있다. 주요한은 명치중학교에 다닐 때부터 일본시단에서 일본어로 시를 써서 작품 활동을 했다. 중학교 다닐 때 쓴 시들은 꿈과 희망이 가득했다. 시의 내용도 밝았다. 시대와 현실에 대한 결기도 있었다. 그러나 학교를 졸업한 이후의 작품들은 그 내용들이 무기력하고 우울하다.
김억의 '해파리의 노래'도 그 내용들이 무기력하고 우울하다. 이 시집의 머리말에 해당하는 '해파리의 노래'에서 김억은 이렇게 밝히고 있다. 이 시집의 제목에 나오는 '해파리'는 시적 자아를 의미하며 시인 자신을 상징한다. 해파리는 '한(限)끝도 없는 넓은 바다 우에 떠돌게' 되며, '이 몸은 가이 없게도 내 몸을 내가 비틀며 한갓 떴다 잠겼다 하며 볶일 따름입니다'에서 그 의미를 잘 알 수 있다. 해파리는 삶의 자주성이 없고 피동적이다. 또한 자신을 스스로 괴롭힌다. 끝없는 정신적 방황과 자학, 이것은 아마 할 일이 없는 데서 오는 일상의 상실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 시집의 내용 중 염상섭에게 바치는 시편 가운데 '아침잠'의 한 구절을 보자. '나는 직업도 없는 게으른 녀석 / 남은 반일(半日), 오늘을 어이 보내며'라는 내용이 있다. 일상의 생활이 답답하다. 무기력할 수밖에 없다.
과거의 문학 작품들을 읽는 것은 그냥 재미로 읽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책 속에서 그 시대 사람들의 현실과 고뇌를 엿볼 수 있다. 이 또한 독서의 즐거움이다. 역사책은 추상적이다. 구체적 생활체험이 없다. 그러나 문학 작품에서는 구체적 생활체험들을 통해서 그 시대 정서의 미묘한 의미를 섬세하게 맛볼 수 있다. 김억의 '해파리의 노래'는 1920년대 초반 식민지 백성이었던 조선 청년세대의 고뇌를 잘 볼 수 있는 좋은 책이다. 특히 서구적 신교육을 받고 앞길이 유망하다고 생각했던 젊은이들, 그들이 막상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첫발을 딛는 순간 현실적 고뇌가 무엇이었을까. 이 책은 이것에 대한 궁금증을 일정부분 말해주고 있다.
정대호 사람의 문학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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