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기도 덕분에 저놈이 그래도 인간 구실을 한다. 저놈 철들 때까지 꿇어앉은 내 복사뼈가 이렇게 흉하게 되었다. 아가, 한 번 봐라. 거북이 등가죽 같제. 그래도 그놈이 제일 효자이기는 하지. 못생긴 나무가 산을 지킨다고 하지 않더냐. 전부 서울로 떠났지만 일곱째는 나랑 살잖아. 사고를 치면, 감옥 보내지 않으려고 합의금으로 들어간 돈이 집 세 채쯤 된다.
사람 됨됨이만 그릇되지 않는다면 그다지 살아가는 데 문제 삼을 일은 없지 않으냐. 범죄자의 신원을 조회하면 빨간 줄이 그어진다고 하더라. 그놈의 빨간 줄이 자식 인생 갉아 먹는 줄 알고 애간장 태운 것 생각하면 지금도 소름이 돋는다. 대마초 사건이다.
얼뜨기 같은 놈이 제 이모 집에 가서 사고를 쳤다. 소죽 끓이는 아궁이 벽에 삼이 걸려 있는 것을 보고 이거 뭐냐고 물었다. 이모가 '대마초'라고 말한 것이 화근이 되었다. 그놈이 이모 몰래 한 줌 떼어 갔니라. 참 시건 없제. 시내에 돌아다니는 껄렁한 친구들에게 보여주면서 우리 이모 집에 대마초가 있다고 속닥거리며 자랑을 했단다. 그놈이 한창 담배에 맛을 들일 때였다. 패거리들과 삼 이파리 한 줌을 양담배 한 보루와 바꾼 것이다.
못난 놈, 제 신세 망칠 줄 모르고. 한창 연예인이 대마초 사건에 연루될 때였지. 그놈들이 봉덕동에 있는 봉봉 여관에서 대마초를 빨다가 인검 나온 경찰에게 들켜버렸다. 저희만 붙잡히면 될 것을 일곱째 이름을 불어서 순경이 찾아왔다. 그때는 심문과 고문이 심했다고 하더라. 말도 마라 순경이라는 신분증을 보여주는데 내가 알기나 하나, 이 또한 무슨 일인고 싶어서 얼마나 떨었던지, 아래턱이 얼얼하더라.
이모 집 툇마루에 서면 범물동 종점이 보인다. 순경을 앞세우고 멀리서 걸어오는 모습이 일곱째 같다고 우리 집에 전화가 왔더라. 자초지종 이야기할 새도 없이 빨리 삼을 태우라고 내가 소리를 질렀제. 이모는 기함하고 삼을 걷어서 쇠죽 아궁이에 쑤셔 넣었다. 수갑에 채여 골목에 들어오는 것을 본 이모는 온몸이 삼발이 사발이 떨려서 서 있을 수가 없었단다. 순경이 다짜고짜 삼을 내놓으라고 소리 지르길래, 소가 설사를 해서 삶아 먹였다고 했다. 조카가 물어서 "대마초"라고 한 것이 잘못이니 선처해달라고 손발이 닳도록 빌었다. 잘못하면 이모도 잡혀갈 뻔했다.
대학생이었으니 감옥에 가면 장래도 문제가 되겠지만 가문의 똥칠이었다. 그놈을 빼내려고 여러 군데 줄을 대느라 집 한 채가 또 들어갔다. 그뿐만 아니다. 다른 자식들한테 말 못 한 사건도 수두룩하다. 좀 미안하기도 하지만, 내가 번 돈으로 해결했으니까 괜찮다.

아가, 내 인생에 눈앞이 아찔한 일이 있었다. 천주님을 믿지 않았으면 집안이 풍비박산 될 뻔했다. 빙의라고 했던지, 무병이라 했는지 잘은 모르겠다. 병명도 없이 내가 많이 아팠다. 점을 보고 굿판을 벌여도 소용이 없었다. 자식은 줄줄이 있고, 걱정이 태산이었다. 돈이 있어도 고치지 못하는 것이 무병이다. 조선천지 용한 의원을 다 만나서 진맥을 해도 내 병을 알아내지 못했다.
먼 일가 중에 점바치가 하나 있다. 그 사람이 내 꼴을 보고 신우대를 잡아야 한다고 했다. 무슨 말인고 하면, 신내림을 받으라고 했느니라. 기가 막혔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 살자고 자식들 앞을 가로막아서야 되겠냐. 무당 새끼 만드는 것은 절대 못 할 일이었다. 차라리 그냥 죽겠다고 버티었다. 온몸이 퉁퉁 붓고 물 한 모금도 마시지 못했으니 산 사람 모습이 아니었다.
하루는 옆집에 사는 노인네가 소문을 듣고 찾아왔다. 성당에 가서 천주님을 믿으면 병이 낫는다고 했다. 용하다는 의원은 다 찾아다녀도 병명도 모르고 낫지를 않았는데 긴가민가했다. 우리 집은 사대 봉제사를 지내는 집이다. 성당은 제사도 지낼 수 있다는 소리에 영감의 귀가 번쩍 띄었다.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속아보기로 마음먹고 옆집 노인네를 찾아갔다. 그 양반이 매일 삼덕성당에 나를 데리고 갔다. 만신창이가 된 몸은 걸을 수가 없어서 소달구지를 타고 갔다. 글도 모르는 내가, 귀로 듣고 입으로 달달 교리문답을 외웠다. 기도를 어떻게 하는지도 모르면서 살려만 주시면 가족들도 모두 천주를 믿게 하겠다고 빌었다.
일 년을 다니다가 세례를 받았다. 죽음을 각오하고 매달린 기도를 하늘이 들어주셨지. 그날 기적이 일어났느니라. 집으로 오는 도중에 치맛말기가 스르르 풀어졌다. 참말로 놀랍제. 붓기가 있던 몸에서 물이 쏟아져 나왔다. 다 쏟아냈다. 오줌을 싼 줄 알았다. 어디서 그 많은 물이 나왔는지 알 수 없었다. 천근만근 무겁던 몸이 가벼워져서 사뿐사뿐 걸어서 집에 왔다.
그 물은 눈에서도 흘렀다. 집으로 돌아오니 식구들이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단다. 저승 문 앞까지 간 사람이 천주님의 은총으로 살아났으니 어찌 기쁘지 아니하겠느냐. 그때부터 가족들이 모두 성당에 다니기 시작했다. 천주님을 믿고부터 우리 집안이 평안했다. 영감도 세례를 받고 대봉성당 전교 회장까지 했단다. 이날까지 내가 성당에 하루도 거르지 않고 가는 이유다. 참 많은 축복을 받았다. 아가, 매일 감사 기도를 잊지 말아라. 너도 세상을 살다 보면 순간순간이 주님의 안배하심이라고 믿게 될 것이다.

여자 팔자 뒤웅박 팔자라고 하더니 하나도 틀린 말이 아니다. 한 번 그릇되면 헤어 나오기가 어렵다고 했다. 아베한테 버림받고, 이를 악물고 독하게 살았더니 신랑이 엉뚱한 짓을 했다. 또, 자식들은 별수 있겠냐. 부모가 밑거름 되어 준 것을 아느냐 말이다. 저 혼자 잘 자란 줄 알고, 머리 굵어지면 부모를 헌신짝 버리듯 관심도 없다. 손가락 마디마디 굽어지고 등이 휘어진 것을, 나이 먹어 그렇다고 뒷집 개 짖는 소리로 듣고 있으니.
내 한 세상 살아온 것을 뒤돌아보니 바들바들 떨면서 보낸 시간이 분하다. 버림받아 분해 떨고, 아까워서 바들바들 떨고, 늙어 기운 빠져 부들부들. 한 걸음 옮길 때마다 떨고 살았다. 이제는 저승 가서 지은 죄 심판받으며 두려움으로 바들바들 떨겠제. 그래도 할 말은 하고 가야겠다. 그 많은 재산, 자식들 나눠주고 달랑 요양병원 침상에 누운 것이 내가 가진 전부구나. 빈손이다.
촛불이 바람에 살랑거린다. 오늘이 시월 열사흘이구나. 오곡백과가 무르익는 풍요로운 계절이다. 좋은 때, 좋은 시절에 가겠다고 했더니 내 기도를 들어주신 모양이다. 이승의 끝자락에서 작별 인사라도 하고 싶었는데 신새벽이라 아무도 없더구나. 자식들은 한 놈도 보이지 않고 불러도, 목이 쉬도록 불러도 대답이 없었다. 날 데리러 온 사람이 문밖에 서 있더라. 할 수 없이 입고 있던 껍데기를 벗었다.
아가, 욕심 내려놓고 미운 사람 용서하며 맺힌 것 풀면서 살아야 한다. 나도 돌아보니 전부 욕심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지독하게 자린고비로 살았다. 아귀같이 모은 것이 아까워 이웃을 위해 자선도 한 적이 없구나. 비렁뱅이로 사는 이들을 보면 게으른 사람이라고 욕이나 해댔다. 그 사람 안의 고통을 바라볼 줄 몰랐다. 악은 선을 이기지 못한다는 것을 명심하고 사람을 선하게 대하여라.
사람 밑에 사람 없고 사람 위에 사람 없다. 모두 평등하다는 말은 수평을 유지하라는 말이다. 내 가슴에는 멍이 많다. 이제 생각하니 분하다고 하는 것은 억울하고 분한 것이 아니라 모르고 살아 온 것들의 잘못을 말한다. 깨달음을 거울삼아 제대로 한 번 살아보려니 갈 길이 바쁘구나. 저기 하늘에서 빛이 보인다. 너도 네 속에서 함께 살아가는 또 다른 너를 잘 보듬어 주어라. 너는 후회 없이 살기를 바란다. 사랑한다, 아가.
〈2021 매일시니어문학상 대상작 논픽션 '분이' 5편은 다음주 목요일(8월 5일)에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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