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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춘추] 예술과 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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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혜진 오오극장 홍보팀장
노혜진 오오극장 홍보팀장

'예술가'라고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영감이 떠오르지 않아 머리를 감싸며 괴로워하고 글을 쓰다가 종이를 구겨 던져버리는 작가, 기행을 일삼는 괴짜, 세상과 인생을 고뇌하는 이상주의자 혹은 천재.

작품을 창작하는 예술가들은 일반인들과는 다른 생각과 생활 방식을 가지고 있을 거라는 선입견이 내 안에 자리하고 있었음을 우선 고백하는 바이다. 그런 생각의 연장선에서 예술 역시 일상과 동떨어진 곳에서 이루어지는 어떤 고차원적인 활동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다 며칠 전 흥미로운 인터뷰 기사를 읽었다. 다큐멘터리 '언더그라운드'를 연출한 김정근 감독이 영화 개봉을 맞아 진행한 인터뷰였다. 감독은 작업의 동력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거창한 건 없고, 그냥 노동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작업 스타일도 '나인 투 식스'다. 제시간에 나와서 일하고, 부지런히 촬영해오고, 엉덩이 붙이고 편집하는 게 전부다. 대단한 동력이 필요한 일도, 공명심 때문에 하는 일도 아니다. 말 그대로 그냥 일이다. 그런데 그 일을 내가 좋아할 수 있어서, 마음을 계속 쓸 수 있어서 다행이다."(웹진 리버스, '지하보다 더 지하'의 일부)

예술의 가치라든가 표현의 자유라든가 하는 거대 담론은 종종 들어왔지만 창작 활동을 일이고 노동이라고 생각한다는 감독의 말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물론 감독의 의견일 뿐 모든 예술가들이 다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예술 창작 활동을 노동으로 접근할 수도 있다는 생각의 전환이 새로웠다. 예술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1%의 영감이라고 생각해 왔던 그동안의 편견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예술과 노동. 얼핏 보면 어울리지 않는 단어의 조합이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세상에 노동이 아닌 일이 어디 있겠나 싶다. 예술은 '일상에서 먼 우아하고 아름다운 어떤 것'이라는 이미지로 노동과는 거리가 먼 특별한 존재로 취급받아 왔다. 하지만 그 우아하고 아름다운 어떤 것을 완성하는 과정을 노동 없이 설명할 수 있을까.

번뜩이는 아이디어와 영감만으로 작품이 뚝딱 완성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한 점의 그림을 완성하기 위해, 한 편의 소설을 쓰기 위해 작가는 수십, 수백 시간을 고민하고 다듬는다. 예술 작품을 창작한다는 것은 시간과 노력 그리고 노동력이 드는 지난한 과정이다. 그동안 나는 그 과정은 외면하고 그럴 듯한 말들에만 현혹되어 있었던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예술도 분명 노동이다. 노동을 통해 눈에 보이는 작품으로 실체화해내지 못하는 예술가의 영감은 어떠한 영향도 주지 못하고 그저 영감으로 사라져갈 뿐이다. 감독의 인터뷰는 편견에 가려있던 나의 눈을 깨끗이 씻어주었다. 작품 이면에 있는 모든 예술가들의 노동에 진심으로 존경심을 전한다. 달라진 마음가짐과 눈으로 작품을 감상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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