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어머니는
웃음이 소박하시고 꾸밀 줄을 모르셨다.
당신의 기쁨과 즐거움은 눈곱만큼도 추구하지 않으셨다.
단지 흰 쌀밥에 소박한 반찬, 반주 한잔으로 더없이 즐거워 하셨다.
자주 아프셨지만 내색하지 않으셨다.
무슨 병인지 몰랐지만, 소리 내어 앓아누워 동네 사람들이 몰려와
몇 차례나 돌아가시는 줄 알았는데 오뚜기처럼 다시 일어서셨다.
다산과 과로에 전신의 통증으로 진통제에 의존하시다가 아편중독 되셨는데
어느새 아편 중독에서 벗어나게 되어 우리 형제들은 너무나 기뻐했지요
우리 어머니는
밥 짓는 일, 빨래, 들일, 자녀 양육 어느 하나도 당신이 감당하기에는
과중하지 않은 게 없었지만, 지혜로 거뜬히 해내셨다.
당신이 일하지 않으시고 쉬는 모습이 그려지지 않는다.
전날 아무리 피곤하고 늦게 주무셔도 이른 아침에 일어나보면
언제나 부엌에서 밥을 짓고 계셨다.
오뉴월 무논에서 모심기한 후에도
여름날 뙤약볕에서 콩밭, 고추밭 김매기 할 때도
타작마당에 덮어쓴 수건과 먼지투성이 얼굴에도
장날 깨 몇 되를 팔아 생선 한 손, 생필품 사서 돌아오실 때도
뒤 못에서 얼음 깨고 빨래한 후 한 짐 빨래를 머리에 이고 들어오실 때도
늘 편안한 미소를 머금으셨다.
우리 어머니는
물레를 돌려 실을 뽑을 때도
마당에 불을 지펴 풀뿌리 솔로 실에 풀 먹이는 길쌈할 때도
비 오는 날 국화빵 굽어내시고 한 여름날 국수를 밀어한 솥 끓여내어 양재기에 푸시면서도
어른들 생신날 돼지비계가 둥둥 뜬 고깃국 끓여 구운 김을 얹어 밥상을 마련하시면서도
호롱불에 둘러앉아 바느질하고 속옷 벗어 이를 잡으면서도
언제나 웃음 머금은 편안한 모습이셨다.
우리 어머니는
자녀들 뒷바라지 위해 절약, 절약 또 절약하셨다.
공부하라는 대신 호호 손을 부시면서 '이제 자야지' 하시면서
홍시와 썬 떡 한 접시를 공부하는 책상 위에 내어놓곤 하셨다.
신우신장염으로 고열과 허리통증이 심하여
병아리 의사의 항생제 주사로 나아지긴 했지만
그 부작용으로 내이가 손상당하여 심한 어지럼증으로 6개월간 고통받을 때도
자식이 마음 상할 까봐 아프다는 내색을 하지 않으셨다.

자식들 모두 성장하여 홀로서기 막바지인데
꽃피는 봄날 갑자기 뇌출혈로 쓰러지셔서
호강이라곤 근처에 가보지도 못하시고 세상을 떠나신
우리 어머니는 우리를 꽃피고 열매 맺게 한 한 알의 밀알이 되셨다.
우리 아버지는
팔 남매 중 외 아들로 귀하게 자랐지만
어릴 적 드라홈이라는 눈병으로 한쪽 시력을 잃어 평생 어려움을 안고 사셨다.
그럼에도 책 읽기를 게을리하지 않아 면내에서는 식자로 통했다.
학자금 마련을 위하여 뒤주의 나락을 실어다 팔고 자금을 마련하는 일과
곡물 중개상인에 외상으로 학비를 꾸어오던 일은 아버지 몫이었다.
아버지는 많은 농사를 꾸려나가야 했지만, 들일과 집안일이 평생 서투셨다.
가정일은 어머니에게 농사일은 일꾼들에게 맡기는 편이 더 나았다.
정작 관심은 글 읽는 것과 세상 걱정, 인륜지도가 무엇인가였다.
사람은 어디서 와서 무얼 하다가 어디로 가는가에 관심을 놓지 않으시고
음양오행 사상과 증산도의 가지 삼덕교에 천착하셨다.
사람의 뿌리인 조상에 대한 공경과 '인륜지 도'의 가르침을 끝까지 놓지 않으셨다.
우리 어머니, 우리 아버지는
형제간에 우애 있게 살아가길 바라는 염원을 가지셨다.
평생 고생만 하시다가 꽃피는 4월 말 홀연히 우리 곁을 떠나셨다.
형제들이 고향을 찾아 우애를 나누도록 16년의 시차는 있었지만 따뜻한 봄날 이틀을 사이에 두고 우리 곁을 떠나셨다.
받은 사랑 갚지 못한 우린 불효자
자식들에게, 이웃에, 세상에 그 사랑 전하기라도 해야 할 우리입니다.
불효자는 울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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