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그리운 내 엄마의 엄마
내가 가장 사랑하는 울 엄마가 엄마라고 불렀고, 나는 할머니라고 부른 따뜻한 사람.
할머니는 웃음 가득한 집안 행사나 시끌벅적한 명절날마다 항상 환한미소를 짓고 있던 모습으로 내 기억 속에 남아있다. 고교 시절 엄마가 할머니를 보살피면서 자연스럽게 함께하는 시간이 늘어났고, 그렇게 추억을 쌓다 보니 몸과 마음이 더욱더 가까워졌다.
할머니 집 곳곳에는 형형색색의 예쁜 식물, 귀여운 강아지나 고양이 같은 동물들이 있어 호기심 가득한 어린 시절 나에게 최고의 놀이터였다. 화장실 한쪽 붉은색 세숫대야가 비좁을 만큼 훌쩍 자라나 눈을 끔뻑끔뻑이며 나를 보던 거북이도 기억에 선명하다.
할머니의 생명을 귀중하게 생각하는 마음은 남달랐다. 비실거리던 병아리도 어느덧 장닭으로 성장해 아침마다 "꼬끼오"하며 힘차게 울 수 있게 됐고, 걷는 것조차 힘들어 보이던 강아지도 새끼 8마리를 낳을 정도였다. 할머니의 따뜻한 마음이 없었다면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할머니의 마음은 동물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도 언제나 따뜻하게 전해졌던 것 같다. 어린 시절 할머니 집은 동네 사람들의 사랑방 같은 곳이었기 때문이다. 항상 이웃들의 함박웃음 소리가 대문을 열지 않아도 담장 밖까지 울려 퍼졌다. 지금도 버릇처럼 엄마는 손이 큰 할머니를 나에게 자랑한다. 할머니는 동네 사람들과 항상 음식을 나눠 드셨고, 동네 사람 중 할머니와 밥 한번 나눠 먹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라고 말이다. 우리 엄마, 삼촌, 이모의 친구들도 아지트인 마냥 삼삼오오 모여 할머니가 지어주신 따뜻한 밥을 먹으며 꿈을 키웠다.

할머니가 떠나시던 그 날도 그랬다. 할머니 장례식 3일 동안 할머니가 나눠주셨던 따뜻한 정에 관해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동네 사람들은 물론 엄마, 삼촌, 이모의 친구들이 어른이 되어 정 많은 우리 할머니를 배웅했다.
남들을 그토록 챙기던 할머니는 정작 자신은 챙기지 못해 안타까움이 더 크다. 지나간 세월만큼 훌쩍 많아진 할머니의 약봉지를 볼 때면 가슴이 시려왔다. 늘 할머니 곁을 지킬 것만 같던 할아버지가 돌아가자 엄마는 할머니의 시린 가슴을 달래고 추억을 쌓기 위해 노력했다. 하늘은 무심하게도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채 몇 개월도 지나지 않아 할머니의 건강마저 앗아갔다. 4~5년 동안 할머니는 생각지도 못한 병원 생활을 하셨다. 모든 가족은 할머니가 요양병원에 가지 않도록 건강 회복에 전념했다. 지나 보면 나눔을 실천하고 당찬 모습으로 삶을 살아가시던 우리 할머니의 쇠약함을 인정할 수 없던 가족들의 마지막 몸부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눔과 생명 존중을 몸소 가르쳐주신 할머니는 스승의 날인 2019년 5월 15일 우리 곁을 떠나셨다. 일상 속 사소했던 할머니의 흔적이 사무치게 그립다. 항상 가득했던 김치냉장고 속 김치 통이 바닥을 보인 지 오래됐고, 냉동실 한쪽을 차지하고 있던 다진 마늘도 이젠 볼 수 없다. 고생하신다며 안 해도 된다고 했던 그때 그 시절 내 모습마저 후회스럽다. 그냥 웃으며 도와드렸으면 될 것을….
여전히 그리운 우리 할머니, 그리워하는 마음마저 걱정해 하늘나라에서 편히 계시지 못할까 걱정됩니다. 하늘나라에선 아프지 말고, 나비가 되어 좋아했던 봄꽃도 마음껏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착하게 살아. 착한 끝이 있다."라고 늘 엄마에게 말씀하시던 걸 이제 저에게 하고 계십니다. 아직도 그 끝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할머니와 엄마의 삶을 본받아 살아가겠습니다.

막 서른 살 어른이가 된 저는 할머니의 가르침에 따라 이웃과 정을 나누며, 동물과 식물 자연을 소중히 여기는 올곧은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할머니만큼 따뜻한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며 살아가겠습니다. 엄마와 저에게 세상에 나눌 수 있는 것에 대해 가르쳐주셔서 감사합니다. 할머니 손녀로 태어날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봄철 만개한 꽃 사이로 나비가 날아다니는 모습을 보며 할머니를 그리워합니다. 빨리 봄이 오길 기다리며 기억할게요. 사랑합니다. 할머니.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매일신문이 유명을 달리하신 지역 사회의 가족들을 위한 추모관 [그립습니다]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가족들의 귀중한 사연을 전하실 분들은 아래 링크를 통해 신청서를 작성하시거나 연락처로 담당 기자에게 연락주시면 됩니다.
▷전화: 053-251-1580
▷이메일: tong@imaeil.com
▷추모관 연재물 페이지 : http://naver.me/5Hvc7n3P
▷사연 신청 주소: http://a.imaeil.com/ev3/Thememory/longletter.html
댓글 많은 뉴스
이준석, 전장연 성당 시위에 "사회적 약자 프레임 악용한 집단 이기주의"
5·18묘지 참배 가로막힌 한덕수 "저도 호남 사람…서로 사랑해야" 호소
[전문] 한덕수, 대선 출마 "임기 3년으로 단축…개헌 완료 후 퇴임"
민주당 "李 유죄 판단 대법관 10명 탄핵하자"…국힘 "이성 잃었다"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