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고] 배치표로 나를 재단하지 말자

수능 점수와 배치표 보며 지원 가능선 따져
학문의 호기심과 즐거움 다져 전공 선택하길

수능시험 원서를 접수하고 수능시험을 치르기까지 과정. 매일신문 DB
수능시험 원서를 접수하고 수능시험을 치르기까지 과정. 매일신문 DB

수능시험 성적표가 나왔다. 이제부터는 과목별 표준점수와 백분위의 싸움이다. 학교와 학원 등에서 소위 배치표로 불리는 대학별 지원 가능점수를 제시하고 있다. 배치표를 보면 1~2점 차이로 학교와 학과가 갈리기도 한다.

잠깐 시계를 돌려 9월 수시 전형 지원 때 상황을 생각해보자. 수시 전형에서는 학생들이 학생부를 기반으로 자신이 가고 싶은 학교(학과)를 정했다. 모의고사 점수가 있기는 하지만 절대적인 지표가 되지는 못한다. 자신의 성향과 의지가 더 중요한 지원 잣대였다. 학생들은 지원 학과를 결정할 때 자신의 학업역량과 전공적합성 등을 먼저 고려한 후 수능시험 성적을 예측(수능 최저학력기준 충족 등)해 지원했다.

같은 학생일지라도 수시 전형에서 지원 대학을 결정할 때와 정시 전형에서 지원 대학을 결정할 때는 사뭇 다른 태도를 보인다. 자신보다는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기 시작한다. 절대 손해 보지 않겠다는 비장함마저 감도는 정시 전형 지원 전략에서 자신의 학습 경향성은 무시되고 오로지 한 칸이라도 배치표 위에 있는 대학(학과)을 지원하려고 한다.

자신의 성향에 맞는 대학(학과)에 가기에는 점수가 남는 상황을 용서할 수 없어 한다. 공과대학을 지원하는 학생이 고등학교에서 물리Ⅱ 과목을 이수하지 않은 데다 수능시험에서도 과학탐구 선택과목으로 물리를 선택하지 않아도 표준점수 총합으로 합격할 수 있는 게 정시 전형이다. 이러한 전형의 특성상 학생들은 지난 3년 간의 노력을 오로지 점수 총합으로 자신을 재단하고 있다.

대학 졸업 후 자신의 전공을 살리는 학생이 얼마나 될까? 아니 진정으로 자신이 원하는 학문을 할 수 있는 학과로 진학을 하기는 했을까? 이러한 의문부호가 자꾸만 더해지는 시점이다.

대학에서는 신입생들이 학교에 입학해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고 있는지를 알아보고 있다. 입학한 학생들의 전형을 기준으로 가장 적응을 잘하는 학생들은 학생부종합전형이고 그 다음은 학생부교과전형이다. 정시 전형으로 입학한 학생들이 학업을 중단하는 가장 큰 이유는 자신의 학습 경향성을 무시한 결과라 할 수 있다.

정시 전형을 준비하는 학생들도 다시 한번 자신의 학생부를 읽어보자. 자신의 고교생활 동안 어떤 과목을 어떻게 이수했는지, 평소에 자신의 관심사는 어디에 있었는지, 어느 분야의 책을 많이 읽었는지 등을 세심히 살펴보자.

수능시험이라는 시험을 넘어 나의 관심사가 어디였는지를 떠올려보면 어떨까? 지금 당장 눈앞의 1~2점이라는 점수에 매몰되기보다 미래의 나를 위해 제대로 된 선택이 무엇인지 생각해보자.

토드 로즈는 '평균의 종말'이라는 책에서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평균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대부분 사람이 믿는 평균이라는 관점도 잘못되었듯이 기존의 좋은 대학, 학과의 기준도 늘 옳을 수는 없다. 누군가에게 매력적인 학과가 누군가에게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 어떤 학교, 어떤 학과를 결정하는 기저에는 학문의 호기심과 즐거움이 우선되어야 한다. 내가 정말 좋아하고 재미있어하는 학문은 무엇일까? 이 질문에 스스로 답해보자.

김기영 매일신문교육문화센터 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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