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짜 점심은 없다.' 경제학에서 유명한 격언이다. 어떠한 편익을 얻기 위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대가나 기회비용이 발생한다는 의미다.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인한 경제 위기를 돈 뿌리기로 간신히 틀어막았던 역풍이 우리의 숨통을 빠르게 조여오고 있다. 지난해부터 시작됐던 물가 상승 도미노에다 이를 잡기 위한 세계 각국의 금리 인상 움직임도 긴박해졌다. 막대한 유동성 공급의 후폭풍이 인플레이션이라는 값비싼 계산서로 되돌아온 것이다.
문제는 돈 잔치 뒤에 필연적으로 불어닥치는 공짜 점심에 대한 대가가 '가난한 이들'에게 유난히 혹독하다는 점이다. 여전히 코로나 사태는 진행 중이고 자영업자, 소상공인, 저소득층은 암흑 속을 걸으면서 경기 후퇴 우려마저 나오고 있다. 여기에다 난데없는 인플레이션 사태까지 겹치면서 물가가 치솟고, 대출 금리 상승으로 이자 부담까지 급증하는 삼중고를 감내해야 하기 때문이다.
일부 경제학자들은 인플레이션이 저소득층에게 더욱 불리하게 작용하는 일종의 역진세(逆進稅·regressive tax) 성격을 가졌다고 꼬집는다. 돈을 풀어 흥청망청 자산 가치가 치솟을 때는 가진 자산이 없어 효과를 누리지 못했는데, 이제는 인플레이션으로 교통비, 식비, 유류비 등 생활에 직결된 상품·서비스 가격이 치솟으면서 실제 구매력은 크게 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흔히 말하는 '벼락거지'라는 웃픈 현실에 역진세 부담까지 감내해야 하는 형국이다.
각국의 재정·통화 당국은 인플레이션을 막을 대안으로 '금리 인상'을 첫손에 꼽는다. 이때 금리 인상이 저소득층이나 청년층 등 금융 취약 계층에게는 더 큰 타격이 된다는 점은 크게 고려되지 않는다.
사실 코로나 사태 이후 대출을 통해 근근이 사업장을 유지해 오던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은 눈덩이처럼 불어난 대출금 이자 부담만 해도 허리가 휜다.
지난해 8월 이후 올 1월까지 진행된 3차례, 0.75%포인트 기준금리를 인상하면서 가계 연간 이자 부담이 9조6천억 원 증가했을 것으로 추산한다. 대출자 1인당 연간 이자 부담 규모는 289만 원에서 338만 원으로 49만 원이 늘었고, 만약 올해 안에 기준금리를 연 2%까지 올린다면 단순 통계로만 따져도 대출자 1인당 이자 비용은 69만 원 더 늘어난다. 여기에다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하는 금융 지원도 3월에는 종료될 예정이라고 한다.
인플레이션의 원인은 복합적이다. 코로나라는 전대미문의 사태가 2년 넘게 이어지며 발생한 통화 증대 인플레이션에다, 반복되는 봉쇄로 인한 공급 부족 인플레이션이 겹쳐 있다. 최근 논란이 됐던 요소수 사태처럼 물류망이 멈춰서면서 제2, 제3의 요소수 사태가 언제든 되풀이될 수 있다.
10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는 물가상승률은 분명 우려스러운 상황이다. 하지만 정부와 금융 당국이 단순히 숫자로 보이는 물가안정만을 목표로 통화정책을 시행했다가는 서민들의 경제위기를 몇 배 더 심화시킬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
지난해 우리 경제성장률이 4%를 기록하는 등 놀라운 성과를 보였지만 이는 숫자에 불과할 뿐, 서민들이 체감하는 현실은 여전히 꽁꽁 얼어붙어 있다. 빠른 속도로 2배씩 불어나는 오미크론 확산세의 속도도 무섭다.
인플레이션이라는 것은 정부가 잡아야 할 중요한 숙제임이 분명하지만, 그 정책 설정 과정에서 '역진세'의 이중고를 감내해야 하는 저소득층과 소상공인, 자영업자에 대한 별도의 대책이 반드시 마련돼야 한다. 아직 우리는 끝을 예견하기 힘든 코로나 사태를 지나는 중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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