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공무원 1년 동안 115억원 횡령할때, 구청은 몰랐다

횡령 직원 소속 부서 감사하고도 '지적 0건'

공금 115억 원을 횡령한 강동구청 공무원 김 모 씨가 26일 오전 서울동부지방법원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공금 115억 원을 횡령한 강동구청 공무원 김 모 씨가 26일 오전 서울동부지방법원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 강동구청 공무원이 1년 넘게 200여 차례에 걸쳐 공금 115억 원을 횡령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지만, 구청은 해당 부서 감사를 진행하고도 이를 적발하지 못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26일 한국일보 취재에 따르면 강동구청은 2020년 10~11월 감사실 주관으로 40일간 행정 종합감사를 실시했다. 자치구 행정감사 규칙에 따라 매년 진행되는 감사로, 부서별로 예산 편성 및 집행 적정성, 각종 보조금 등 지급 정산 실태 등 업무 전반을 점검한다. 강동구청은 각 부서가 2년에 한 번씩 감사를 받도록 일정을 짠다.

재작년 감사 땐 횡령 혐의를 받는 A씨가 있던 자원순환센터추진과가 대상에 포함됐다. 이 부서는 관내 고덕·강일 공공주택사업지구 부근에 있는 지상 폐기물처리시설을 대체할 지하 시설의 건립을 담당하는데, 업무엔 건립기금 관리도 포함된다.

A씨는 이곳에서 2018~2020년 3년간 근무하면서 2019년 12월부터 공금에 손댔다. 서울주택도시공사(SH)의 건립기금 납입분을 빼내는 수법이었다. SH는 서울시·강동구와 협의해 폐기물처리시설 건립 비용 일부를 부담하기로 하고 2019년부터 3차례에 걸쳐 115억 원을 입금했다.

그럼에도 강동구가 재작년 감사에서 적발한 지적사항 85건 가운데 자원순환센터추진과 관련 사항은 한 건도 없었다. 구청 안팎에선 감사 과정에서 계좌 확인만 철저히 했어도 비리가 일찍 발각됐을 거란 지적이 나온다. 한편으론 A씨가 회계시스템 감사가 형식적으로 이뤄진다는 점을 간파하고 대담한 범죄 행각을 벌였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A씨는 SH 1차 송금분(38억 원)은 81회, 2차분(35억 원)은 71회, 3차분(41억 원)은 84회로 각각 나눠 개인 계좌로 이체했다. 도합 236차례에 걸쳐 횡령이 일어난 셈이지만 경보는 전혀 울리지 않은 것이다.

강동구도 뒤늦게 자체 조사에 나섰다. 23일 A씨를 경찰에 고발하고 직위 해제한 구청은 공직비리 특별조사반을 편성해 예산회계 전반을 감사하고 A씨 횡령 과정에 조력자가 있는지를 조사할 계획이다. 이정훈 강동구청장은 사과문을 통해 "경찰 수사에 적극 협조해 민형사상 모든 조치를 강구하고 피해액을 최소화하겠다"며 "유사 사례 방지를 위한 대책 마련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사건으로 당초 2024년 완공을 목표로 추진하던 폐기물처리시설 건립 사업도 차질을 빚을 전망이다.

서울동부지법은 이날 오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업무상 횡령 혐의를 받는 A씨에 대해 "증거인멸과 도주 우려가 있다"며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 출석을 위해 오전 10시 50분쯤 법원 앞에 나타난 A씨는 "단독 범행인가" "구청에서 확인한 건 없었나" "투자 손실액이 얼마인가" 등의 취재진 질문에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