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단독] "역사 속에 묻힐 뻔한 1938년 2월 '왜관독립운동'을 아십니까"

왜관비밀결사·동경조선인유학생연학회·동경프롤레타리아 연극계가 연합한 전국 규모 독립운동
지난해 고증자료 확보로 국내 독립운동사에 당당히 이름 올리게 돼

왜관독립운동을 주도한 인물 중 하나인 이석 선생이 살았던 칠곡 매원마을의 이석 고택. 이현주기자
왜관독립운동을 주도한 인물 중 하나인 이석 선생이 살았던 칠곡 매원마을의 이석 고택. 이현주기자

1938년 경북 칠곡군 왜관읍에서 벌어진 전국 규모의 '왜관독립운동'이 후손들에게 구두로만 전해져 오다 최근 고증 자료 발견으로 국내 독립운동사에 당당히 이름을 올릴 수 있게 됐다.

왜관독립운동은 노동자·농민 단체인 '왜관비밀결사'(89명), 재동경조선인유학생연학회(14명), 재동경프롤레타리아 연극계(8명)가 연합해 1938년 2월 칠곡군 왜관읍에서 조선의 독립을 도모한 사건이다.

독립운동의 장소는 인적·물적 자원이 풍부한 칠곡군 왜관읍이었지만 주동인물은 서울, 부산, 광주, 만주, 일본 동경 등 각지에서 건너온 이들이었다. 왜관읍 매원마을 출신인 이석 등 1929년 서울학생청년독립운동 주역들이 주도했고 20세부터 49세까지 농민, 노동자, 연극인, 상인, 재봉업, 기자, 인쇄업, 보험사 직원, 대학생 등 다양한 계층에서 동참했다.

이들은 당시 일본이 중국과 인도차이나 반도 등에서 전쟁에 몰두하는 것을 기회로 야학과 독서회, 부녀회 등을 조직해 일분군 내부 분열 공작, 군수품 공급 및 수송의 방해 등으로 후방을 교란시켜 일본을 패전으로 이끌고 독립한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이런 계획은 일본 경찰에 적발됐고 주동인물 66명은 그해 2월 19일 왜관경찰서에 피검돼 이듬해 10월, 12월 대구지방법원 검사국에 넘어갈 때까지 2년 가까이 고문을 받았다. 이 과정에서 2명은 목숨을 잃었다.

이 사건은 지금까지 역사 속에 묻혀있다 4개월 전(2021년 10월) 일부 후손의 노력으로 성균관대 임경석 교수와 숙명여대 강혜경 교수로부터 관련 자료를 확보하면서 빛을 보게 됐다. 조선총독부 경무국 보안과의 비밀문서인 '고등외사월보', '조선치안상황', 일본 동경 경시청이 조선인유학생연학회를 정찰한 기록이 있는 '소화특고탄압사' 등을 통해서다.

그간 왜관비밀결사 후손들은 독서회사건 및 노농조합사건 등으로, 동경유학생연학회 후손들은 동경유학생연학회사건 등으로만 단편적으로 알고 있을 뿐이었고 고증할 자료도 갖고 있지 못한 상태였다.

왜관독립운동 고증 자료 확보에 힘쓴 이호찬(왜관비밀결사 이일신 선생의 아들) 씨는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관련 얘기는 들었지만 이를 입증할 자료를 찾지 못해 애를 태웠는데 이제야 이 사건을 우리 독립운동사에 제대로 포함시킬 수 있게 돼 감회가 깊다"고 말했다.

왜관독립운동 일부 후손들은 이달 19일 칠곡군 보훈회관에서 '왜관독립운동 기념식'을 갖고 이 사건을 조명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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