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광장] 나의 루틴은 안녕한가요

김경호 신나는체험학교 대표

김경호 신나는체험학교 대표
김경호 신나는체험학교 대표

루틴(Routine)이란 뜻을 최근 알게 되었다. 새 용어를 익히는 걸 게을리한 탓이다. 루틴의 유래는 운동선수들이 습관적으로 하는 행위를 말한다.

예를 들면 축구선수 호날두가 프리킥을 찰 때 다섯 걸음 물러서서 공을 찬다든가,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는 "항상 같은 루틴을 따르면 평정심을 유지해 굿 샷을 할 수 있다"고 했다. 루틴은 거창한 게 아니고 반복적이고 규칙적인 습관을 말한다. 잠자리에 들 때나 일어나서 물 한 잔을 마시는 등의 규칙적이며 반복되는 일을 말한다. 매일 아침 등산을 하거나 산보를 하는 것도 개개인의 습관화된 루틴이다.

다산 정약용의 강진 유배 때 일화다. 강진 주막에서 머물던 다산은 주막 마당에서 노는 예닐곱 명의 15세 남짓한 아이들을 불러 모았으나, 그중 한 명, 황상만은 다산에게 오질 않았다. 다산이 세 번을 부르니 마지못해 다산에게 다가왔다. 다산은 어디에서 글 공부를 하느냐는 둥, 이것저것 묻고는 부끄러움이 많아 숫기가 없는 황상만을 남겨두고 아이들을 모두 돌려보냈다. 다산은 우직한 심성을 가진 황상을 유배지에서의 첫 제자로 점찍었다.

그러나 황상은 글공부에는 관심이 없었다. 황상은 "저는 둔하고, 꽉 막혔고, 생각의 짜임새가 없어서 공부가 안 된다"고 다산에게 말했다. 다산은 배우는 사람들의 세 가지 문제를 얘기했다. "빨리 외우는 사람은 대충대충 익히고, 글을 날카롭게 짓는 사람은 내용이 얕고 가벼우며, 이해력이 뛰어난 사람은 깊게 파고들지 않아 거칠기 쉽다"고 했다. 다산은 이 세 가지 문제가 황상에게는 하나도 없기에 공부를 잘할 수 있다고 격려를 했다.

다만 "둔한 것을 막으려면 부지런해야 하고, 막힌 것을 뚫으려면 또 부지런해야 하며, 생각의 짜임새와 개념을 위해서는 더더욱 부지런해야 한다"고 했다. 다산은 우직한 황상에게 '부지런'을 주문했다. '부지런'의 또 다른 말은 성실과 끈기이리라. 실제 다산도 유배지에서의 막막한 미래를 하루하루의 성실함으로 버텨냈다. 18년간의 유배 생활에서 무려 500여 권의 저서를 집필한 것만으로도 다산의 성실과 부지런을 엿볼 수 있다. 황상도 그 스승을 따라 시인이자 학자가 되었다.

나이가 들면 깨닫는 것은 시간의 소중함이다. 그래서 살아온 날보다 살날이 더 짧다는 생각으로 짧고 한정된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고 알차게 쓸 궁리를 하게 된다. 허술하게 돈을 잃는 일보다 하릴없이 시간을 잃는 게 더 아까운 요즘이다.

다산은 황상에게 "부지런하고 또 부지런하려면 마음을 다잡아야 한다"고 했다. 다산이 황상에게 한 말이 곧 나에게 교차된다. 짜임새 있는 하루와 그 하루에 의해 한 달, 일 년이 지나고 남은 생을 보내고 싶다는 생각은 결국 마음에서부터 시작한다. 하루를 변화시키는 일이 거창할 필요는 없다. 아침에 일어나면 이부자리를 개어 성취감을 맛보고 따뜻한 차 한 잔을 마시며 오늘 하루를 생각한다. 아침 운동 삼아 팔굽혀펴기, 스쿼트로 몸을 데운 뒤, 하루를 시작한다는 등의 반복적이고 지속적인 '부지런'이 필요하다.

규칙적이고 반복적인 행동은 몸이 기억한다. 몸의 기억으로 의식이 따라가는 구조다. 작심삼일은 몸이 먼저가 아닌 머리가 먼저 앞섰기 때문이리라. '사람은 바뀌지 않는다'는 말을 바꾸는 힘은 자잘한 습관에서부터 시작될 수 있다. 부지런히 생각하고 부지런히 몸을 써야 한다. 나를 바꾸는 일은 아침에 눈을 뜨면서 시작된다. 나의 루틴을 아침부터 시작하면 안녕하고도 평안한 하루가 가능하다. 그 하루라는 점을 이으면 평생이 될 것이다. '평생 동안 이루면 과연 바뀌지 않는 것이 있을까' 하는 느지막한 생각이 아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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