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그립습니다] 최덕술(성악가) 씨의 은사 고 김정웅 경북대 예술대학 교수

60세 때 독일어 오페라 '장미의 기사' 주연으로 대사 외워 공연하셨지요

은사인 고 김정웅 경북대 교수와 함께 공연했을 때의 모습. 오른쪽 첫 번째가 최덕술 성악가, 오른쪽에서 세 번째가 고 김정웅 교수. 최덕술 성악가 제공.
은사인 고 김정웅 경북대 교수와 함께 공연했을 때의 모습. 오른쪽 첫 번째가 최덕술 성악가, 오른쪽에서 세 번째가 고 김정웅 교수. 최덕술 성악가 제공.

그리운 김정웅 선생님, 저희들 곁을 홀연히 떠나 하늘로 가신 지 어느덧 5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먼발치에서 저희들을 내려다보시고 계실 그 곳에서는 안녕하신지 무척 궁금해집니다.

지난해 10월, 선생님을 추모하는 음악회가 있었습니다. 대구문화예술회관이 작고예술인 재조명시리즈의 두 번째 순서로 한국 오페라계의 대표 베이스셨던 선생님을 추모하는 자리였었습니다. 그 음악회를 준비하면서 저는 가슴이 계속 뭉클했었습니다. 국내외를 오가며 다양하게 활동하고 있는 선생님의 제자들이 한데 모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선생님이 얼마나 대단한 분이셨는지 다시 한 번 느끼게 됐습니다.

선생님과의 첫 만남이 불현듯 떠오릅니다. '성악'의 '성'자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입학했던 대학교 입학 후 선생님과의 첫 만남 당시 저는 선생님이 그냥 말씀하시는 목소리에서부터 나오는 저음의 울림에 압도당했었습니다. 마치 무협지 속 대단한 무공을 지닌 고수를 만난 느낌이었다고나 할까요. 그 후 진행된 레슨에서 저는 해일처럼 밀려오는 선생님의 열정을 오롯이 마주했습니다. 그 때만 생각하면 성악가로서의 첫 발을 제대로 내딛게 해주신 선생님의 모습에 저 또한 덩달아 가슴속에서 뭔가 뜨거움이 차오르곤 합니다.

레슨 시간에는 모두가 기진맥진할 정도로 엄격함과 열정을 보여주셨지만, 레슨실 밖에서는 더없이 소탈하고 자유분방한 모습을 보여주셨었습니다. 저 또한 선생님의 위치에 서게 되면서 선생님이 가르쳐주신 대로 살아보려 했지만 쉽지 않았습니다. 생각해보니 이 부분은 선생님의 타고난 성품과 인격 때문이었음을 깨닫게 됐습니다. 겸유덕 근무난(謙有德 勤無難, 겸손하면 덕이 있고 근면하면 어려움이 없다)이란 옛 성현의 말씀 그대로 사신 분이었던 거죠.

선생님과의 가장 잊지못할 순간은 15년 전 쯤 제가 대전오페라단에서 '라보엠'을 공연할 때였습니다. 당시 선생님은 오페라 무대 속 제 모습을 보신 뒤 제가 머무르던 호텔로 오셨었죠. 그 때 선생님은 "오페라 데뷔 초 때 내가 지적해줬던 부분을 많이 고쳤구나. 정말 잘 했다"며 칭찬을 해 주셨습니다.

평소 쉬이 칭찬을 하지 않으셨던 선생님께 들은 첫 칭찬에 저는 선생님께 제대로 인정받았다는 생각에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그날 밤새 호텔 방에서 오페라와 성악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던 그 순간은 제 인생의 너무나도 강렬한 한 순간으로 각인돼 있습니다.

고 김정웅 교수가 생전에 오페라 무대에 섰을 때의 모습. 최덕술 성악가 제공.
고 김정웅 교수가 생전에 오페라 무대에 섰을 때의 모습. 최덕술 성악가 제공.

저를 포함해 선생님이 키워낸 많은 제자들이 국내외 여러 무대에서 선생님의 가르침을 따라 재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저 뿐만 아니라 많은 제자들에게 성악가로서의 길은 어떠해야 하는지 제시해 주셨습니다. 지난해 추모음악회를 준비하면서 선생님이 열어주신 길을 걷는 많은 제자들이 모였을 때, 선생님의 대단함을 다시금 느꼈습니다.

이순의 나이에 독일어로 된 오페라 '장미의 기사' 주연을 맡아 그 많은 대사를 다 암기해 공연하시던 그 열정을 기억합니다. 이제 저도 선생님이 '장미의 기사' 주연을 하시던 그 때의 나이가 됐지만 아직 그 열정을 따라가기엔 부족한 제자란 생각이 듭니다. 성악에 대한 순수한 열정으로 노래 그 자체에 즐거움을 가르쳐 주신 선생님이 오늘 따라 더욱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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