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주목 이사람] 성공 신화 써 온 김진영 전 영주시장

'선비의 고장' 탄생시킨 참일꾼
축협조합장·국회의원·시장, 한평생 고장 발전에 이바지
명품 특산물·관광자원 발굴 신뢰로 쌓아올린 '성공신화'

김진영 전 영주시장. 마경대 기자
김진영 전 영주시장. 마경대 기자

"내가 유치하고 만들어 놓은 곳을 둘러볼 때 무한 보람을 느낍니다."

한 평생 지역발전을 위한 삶을 살아 온 김진영(84) 전 영주시장. '선비의 도시' 영주를 이끌어 온 큰 어른이자 참 일꾼으로 존경받고 있다.

권위주의를 내려 놓고 일을 찾아 발로 뛰는 성실함의 주인공이다. 자신의 공을 남에게 자랑하는 법도 없다. 항상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소신을 펴 주위 신망도 두텁다.

재산은 정직과 성실, 청렴이다. 80평생의 인생 여정은 한편의 드라마다. 작은 집 짓고 농장이나 하는 소박한 꿈을 꾸던 소년에서 축협조합장과 국회의원, 영주시장으로 변신을 시도한 성공신화를 썼다.

1964년 서울대 농대를 졸업한 그는 고향 영주로 귀농해 미국산 젓소 2마리로 축산인의 꿈을 꿨고 양계와 양돈, 한우 사육으로 꿈을 확장하면서 선친의 허락을 받지 못해 꿈을 접어야하는 순간도 있었다.

축산기원 직원으로 취직해 1년간 봉급쟁이 생활도 했지만 결국 그의 도전정신은 그가 살던 마을, 상망동을 축산 단지화로 탈바꿈 시키는데 성공했다. 그런 공로로 박정희 대통령으로부터 청소년 육성 표창을 수상했고 상망동은 농촌모범마을상을 수상하는 성과를 올렸다.

1976년 그는 축협조합장에 이름을 올렸다. 12년간 4선 조합장을 지내면서 축협 청사 이전, 조와리 생장물 사업장(한우, 양돈 사육), 문정동 도계장(달 도살장) 등을 추진, 영주축협을 도내 최고의 조합으로 우뚝 세웠다.

그는 12년간 조합장을 지내면서 단 한푼의 월급도 받지 않았고 업무추진비와 판공비, 출퇴근 차량과 유류비 등을 모두 개인돈으로 충당하는 전무후무한 기록도 세웠다.

김진영 전 영주시장. 마경대 기자
김진영 전 영주시장. 마경대 기자

김 전 시장은 "당시 이사들이 조합이 사업장을 운영하면 망한다고 반발해 조합장이 모든 것을 책임지는 조건으로 이사회 승인을 받아 사업을 추진했다"면서 "과정은 힘들고 어려웠지만 조합원들과 쌓은 무한 신뢰와 믿음이 결국 성공을 이끌어 냈다"고 당시를 회고 했다.

이런 희생과 노력은 정치인으로 탈바꿈하는 원동력이 됐다. 그는 1988년 13대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대한민국 농업을 살려달라'는 농민들의 압도적 지지로 이변을 일으켰다.

그는 활발한 의정활동으로 영주지역에 4년재 대학유치(현 동양대학교)와 중앙고속도로 노선 확정, 대규모 농공단지 조성 등 3대 역점사업을 해결했다.

또 소수서원 교육관·사료관 신축, 시영아파트 건립, 순흥·단산·부석저수지 건설, 새마을회관 건립 등 굵직굵직한 숙원사업을 해결했다. 이 밖에 농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다양한 법률 재·개정을 주도했다.

노태우 대통령 동서인 금진호 장관의 출마로 재선 출마를 포기한 김 전 시장은 3년간 본업인 축산업에 충실했다. 이후 주민들의 추대로 민선시대 첫 영주시장에 무소속으로 출마, 당선되는 또 한번의 이변을 일으켰다.

재선 영주시장을 지내면서 영주를 '선비의 고장'(특허)으로 으로 각인 시켰고, 선비촌조성과 순흥 역사문화유적권 개발 사업, 청소년수련원, 소수박물관, 풍기온천 개발, 축산기술연구소와 풍기인삼시험장·과수시험장 등 경북도 산하기관을 유치했다.

경륜훈련원 유치, 서천 고수부지 조성, 하수처리장과 쓰레기 매립장 조성, 국립공원사무소 유치, 담배인삼제조창(현 KT&G) 유치 등 지역발전의 초석도 마련했다.

김진영 전 영주시장은 "영주는 한우와 사과, 인삼, 인견 등 명품 특산물과 소수서원과 화엄종찰 등 전통 문화, 소백산을 중심으로 한 관광자원, 지속가능한 첨단제조기업, 대학 등이 자리하고 있는 살기좋은 도시다"고 자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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