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국학진흥원은 스토리테마파크 웹진 담談 3월호를 '공직의 덕목'이라는 주제로 발행했다.
오는 9일 제20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공직자들과 새롭게 선출될 대통령이 조선시대 선인들이 남긴 일기를 통해 조선 관리들의 청렴과 바른 모습, 부패하고 탐욕스런 행태를 반면교사로 삼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이정철 박사의 '받침돌 같은 바른 권력을 꿈꾸며'는 고려시대 무신정권기 '정방'(政房)이라는 기구가 인사권을 사유화해 고려의 멸망에 이르게 했는지와 어떻게 조선의 건국이 인사 행정의 공공성 회복이라는 과제를 수행하게 됐는지를 이야기한다.
1225년에 당시 무신정권 최고 권력자 최우(崔瑀·?~1249)는 자기 개인 집에 정방을 차리고 조정의 문관과 무관에 대한 인사행정을 마음대로 했다.
무신정권은 100년만인 1270년에 무너졌다. 그러나 정방은 실질적으로 고려가 패망할 즈음까지 존속했다. 누가 권력을 쥐든, 권력의 핵심인 인사권을 사유화하고자 하는 유혹이 너무나 강렬했기 때문이다.
조선 왕조 건국은 사유화 됐던 권력을 공적인 것으로 되돌려 놓는 과정이었다. 조선 왕조의 인사행정을 '도목정사'(都目政事)라고 했다.
도목정사에서 관리들을 평가하는 주요한 기준은 '수령7사'였다. '수령7사'는 조정이 수령에게 부여한 7가지 임무였다.
'농상성'(農桑盛·농업과 양잠에 힘씀), '호구증'(戶口增·호구를 증가시킴), '학교흥'(學校興·학교를 일으킴), '군정수'(軍政修·군정을 정비함), '부역균'(賦役均·부역 부과를 균등하게 함), '사송간'(詞訟簡·사송을 신속하고 분명하게 처결함), '간활식'(奸猾息·교활하고 간사한 버릇을 그치게 함)이 그것이다.
조선 왕조는 백성들을 억압적인 지배 대상으로만 보지 않았다. 조정에서는 오히려 백성들을 법과 무력으로 다루어야 할 통치 대상 이전에 공적 원리에 근거한 설득의 대상으로 보았다.
하원준 감독의 '토호 세력에 맞선 조선 공무원 류작(柳綽)'에서 지역 발전을 방해하는 토호(土豪) 세력과 맞섰던 류작(柳綽)에 관한 이야기를 펼친다.
류작은 1686년(숙종 12)에 태어난 문신으로서 토호들에 의해 온갖 폐단이 집중돼 부사들이 매번 토호들에게 패배 당했던 경상도 영해(寧海)에 부임했다.
그는 세금을 공평하고 정확하게 징수했고, 토호 세력과의 결탁을 일삼는 서리와 아전의 허위 문서를 엄하게 문제 삼고 이를 바탕으로 환곡했다. '봉산에'(특별관리되던 국유림)서 이뤄졌던 토호들의 벌채(伐採)를 금지하는 강력한 조치를 했다.
'나무판에 새긴 이름, 편액'에서는 공직자의 '출처진퇴'(出處進退)를 보여 준 류승현(柳升鉉)의 용와(慵窩) 편액을 소개한다. 류승현은 관직에 있으면서 공정하고 사사로움이 없이, 공평함으로 정무에 임해 당대 사람들로부터 '공평한 사람'이라는 평을 들었다.
류승현은 이인좌의 난이 일어나 영남 지역까지 반란군의 세력이 뻗쳐 올 때 안동부에서 제일 먼저 의병을 일으켰고, 피폐해진 고을과 병들고 지쳐있는 백성들을 구제하고 부패한 관리를 처벌하며 공정을 바로 세웠다.
웹진 3월호 편집장을 맡은 공병훈 교수는 "끝없이 충돌하며 비판하고 토론하는 과정인 민주주의 체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부분"이라고 언급하며 "이번 대통령 선거가 우리 사회와 모든 구성원의 의견과 마음을 모아 소통하며, 낮고 그늘진 곳의 존재들까지도 행복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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