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끼고 사랑하는 후배 병호에게.
네가 우리 곁을 홀연히 떠나간 지 몇 달이 지났구나. 작년 10월에 갑자기 황망한 소식을 들었을 때는 정말 한 쪽 팔이 떨어져나가는 아픔을 느꼈다. 네가 떠나가고 맞는 첫 봄날, 네가 있었다면 '어느 산을 가 볼까'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을텐데 떠나간 빈 자리가 참으로 크구나.
왜 이렇게 일찍 사랑하는 사람들 곁을 떠나갔니. 얼마전만 해도 "선배님, 저도 이제 60입니다"라는 너의 말에 "아니, 네가 벌써 60이라니…"라며 지나간 세월이 어마어마했음을 확인한 게 엊그제 같은데 말이다.
병호야, 너는 나의 고교 후배지만 등산에선 선배였지. 산을 오르는 일을 항상 진심으로 대하던 너를 보며 나도 참 많이 배웠단다. 특히 역경을 만나도 묵묵히 이겨나가는 모습에 많은 감동을 받기도 했다. 89년 로체샤르 원정 때였던가. 당시 너는 영남대 OB산악회를 이끌고 등정을 할 때였지. 그 때 사고도 많이 일어나서 네가 이끌던 팀에서도 사망자가 나오는 가슴아픈 일이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 때 너는 그 역경을 딛고 정상에 올랐고, 나는 그 모습을 보며 마음의 큰 울림을 얻었다. 그 때부터 너를 후배로서 좋아하며 산악인 선배로서 존경하는 마음도 갖게 됐지.
또 너는 산을 포함해서 다양한 분야에 박식하고 기억력도 좋았던 걸로 기억한다. 산행 중에□ 이런저런 이야기하다가 어떤 사안을 걸고 "내기할래요?"라고 하면 항상 네가 알고 있던 게 맞았어. 그럴 때마다 네가 정말 대단해 보였었다.
그런 성격 때문이었을까, 너는 매사를 항상 묵묵히, 우직하게 행동하고 처리해 왔지. 그래서 이뤄낸 것도 많았지 않았니. 대구 산악인 중 에베레스트를 최초로 등정했을 때도, 모교 동창회 산악회를 재창립할때도, 팔공산 비로봉의 개방을 이끌어낼때도, 지금의 대구등산학교를 법인으로 만들어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만든 것도 너의 그 우직하게 뭔가를 만들어내는 성품과 능력이 한 몫 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옆에서 지켜볼 때 가끔씩은 그런 모습이 안타깝게 느껴질때도 있었다. 중간에 생활이 어려워진 때에도 남에게 티내지 않고 그 어떤 곤궁한 티도, 어려운 티도 내지 않았었지. 사실, 후배들 중에는 너의 우직한 모습이 너무 거대한 산처럼 느껴져 다가가기 힘들다고 한 사람도 없지 않았단다. 한 마디로 '경상도 산 사나이'의 면모였지. 그래도 나에게는 이런저런 힘든 이야기를 털어놓기도 해서 다행이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단다.
네가 세상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했던 통화가 갑자기 떠오르는구나. 평소 술 먹자는 전화는 했어도 안부전화를 따로 하지 않았던 네가 갑자기 안부가 궁금해서 전화했다고 했을 때, 그 때 좀 더 이야기를 많이 들어주고 힘든 부분이 있으면 도와주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해가 바뀌고 술잔 기울이며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렇게 갑자기 우리곁을 떠나가 버리니 '이럴 줄 알았으면 더 마음을 주고 신경써줬어야 했는데' 하는 마음도 계속 남는다.
'고독한 거인' 같았던 병호야, 살면서 이런저런 풍파도 많이 겪었지만 이제는 우리 곁을 떠나 있구나. 이제는 저 세상에서 평화와 안정을 가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나는 네가 떠나간 게 지금도 아쉽고, 애달프고, 그립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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