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종교칼럼] 그가 던진 질문 1

전헌호 대구가톨릭대 대학원 종교영성학과 교수

전헌호 대구가톨릭대 대학원 종교영성학과 교수
전헌호 대구가톨릭대 대학원 종교영성학과 교수

얼마 전 인근 공소(公所)를 찾았다. 최근 은퇴한 그가 그곳에서 살기로 했기 때문이다. 40년의 사제생활을 뒤로한 그는 무엇을 더 해야만 하는 것이 아니었지만, 더 봉사하는 삶을 선택한 것이다. 하지만 현직에 있는 주임신부와의 관계도 고려해야 했기에 매사를 현명하게 판단해야 하는 부담을 져야 하는 곳이었다.

약속한 시간에 맞춰 도착했다. 이미 마당에 나와있던 그는 언제나처럼 환한 미소로 나를 반겼다. 흰머리와 주름이 적당히 자리잡은 얼굴의 그를 만나면 그와 함께 했던 지난날의 많은 것이 겹쳐 보일 때가 많다. 다양한 일들이 시차를 두고 떠오르곤 한다.

젊은 날 맑고 깨끗했던 그의 얼굴, 잘 빗어 깔끔했던 새까만 머릿결, 화려하진 않았지만 가지런했던 옷차림, 조금씩 흰머리가 드러나기 시작했으나 여전히 건강하고 밝았던 시절, 다양했던 그의 과제와 직책들, 수없이 옮겨 다녔던 삶의 터전들 등 일일이 나열할 수 없는 많은 것이 의식과 무의식 세계를 오가곤 한다.

언제나 분배에 관심이 있었던 그와 생산에 관심이 있었던 나 사이에 의견이 일치하지 않아서, 서로의 이야기를 경청하느라 상당한 인내심으로 견뎌야 한 경우도 드물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는 그럴 때마다 잘도 참아냈고 얼굴을 붉히거나 목소리를 높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와의 대화는 살아온 날만큼 폭과 깊이가 넓고 깊어서 늘 시간이 부족했지, 대화거리가 동나거나 흥미가 사라진 경우는 없었다.

살아온 세월이 상당히 축적돼 은퇴를 하는 시기에 이른 우리이지만, 지난날을 되돌아보면 그 모든 것이 마치 엊그제 일이나 되는 듯 짧게만 느껴진다. 젊었던 날 우리 눈에 비친 칠십에 이른 사람들은 대단히 나이가 많고 삶을 거의 다 산, 죽음 가까이 있는 노인이었다. 그런데 그와 내가 바로 그 나이에 이르고 보니 삶을 거의 다 산 것이 아니라 이제 무언가를 좀 알 듯해 제대로 살아볼 수 있을 것 같다. 보람과 의미를 참으로 누릴 수 있을 것 같은 생각도 제법 강하게 자리 잡는다.

게다가 놀랍게도 내면의 세계는 여전히 이십대에 가졌던 자의식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아니 이게 뭐야? 우리가 20대였을 때 30대, 40대, 50대가 되고 마침내 60대, 70대가 되면 성장해가면서 점점 다른 자의식으로 풍부한 내면의 세계를 누리게 될 줄 알았는데, 20대 때와 거의 같잖아? 10대 때와도 별로 달라진 것이 없잖아?" 참으로 놀랄 일이다.

뇌 과학자 중에는 우리의 지상 삶이 다하면 육체는 해체되지만 변하지 않는 자의식은 그대로 유지돼 다음 삶으로 이어진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 견해를 처음 접했을 때와 달리 요즘은 이들의 주장도 일리가 있겠구나 생각한다.

며칠 전 그 공소에서 가졌던 만남에서도 우리는 기운을 잃고 죽어가는 분위기가 아니라 생기발랄한 목소리로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관심의 대상은 여전히 삶에 관한 것이었고 그것도 지구촌 인류 전체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담긴 것이었다. 일생을 봉사에 매진해온 그는 책과 더불어 살아온 나에게 어울릴 질문을 던지곤 했는데 그날도 그랬다.

"우리 지구가 먹여 살릴 수 있는 인구수는 얼마나 되니?" 그가 이 질문을 던지며 간단히 대답해 달라고 했다. 그의 간단한 질문에 짧은 말로 대답하기 곤란했던 나는 다음 지면을 통해서 가능하면 간단하게, 그러나 옳은 내용을 제대로 알려주는 대답을 하려고 노력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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