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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립습니다] 최복순 씨의 남편 고 김잠식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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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 세월 동고동락…"글자는 참하게 썼네"당신 격려 덕분에 글 깨쳐 편지 썼는데 직접 주지 못해 아쉬워

고 김잠식 씨(사진 왼쪽)와 최복순 씨 부부가 김 씨 생일을 맞아 나란히 앉아 생일을 축하받고 있다. 가족 제공.
고 김잠식 씨(사진 왼쪽)와 최복순 씨 부부가 김 씨 생일을 맞아 나란히 앉아 생일을 축하받고 있다. 가족 제공.

사랑하는 나의 영감, 하늘나라에서는 잘 지내나요? 나랑 당신 자식들, 며느리들, 손자, 손녀들은 다 잘 지내고 있습니다.

당신이 떠나던 3년 전 그날 아침에 당신이 입원해 있던 병원에서 연락을 받았을 때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다행이 우리 큰 아들이 당신의 마지막 길을 지켜보긴 했지만 정작 한 평생 함께한 본인은 당신의 마지막 가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봐 주지 못한 게 너무 아쉬웠어요. 매일같이 병원에서 당신이 젊은시절, 아니 10년 전 튼튼하던 때로 돌아와 주길 기다렸었는데 세월이 문제인지 아니면 부처님의 뜻인지 그렇게 가셨네요.

난 당신이 그렇게 우리 곁을 떠날 거라고 생각하기 어려웠었답니다. 70대까지만 해도 감기몸살 한 번 안 앓고 기운도 좋아서 무거운 짐도 젊은이들처럼 휙휙 들고 내리던 당신이었는데 갑자기 심장이 안 좋아지더니 어느날은 머리가 아파서 결국 뇌 수술을 해야만 했죠. 그 때는 그렇게 당신이 빨리 우리곁을 떠나갈 줄 몰랐네요.

최복순(왼쪽) 씨와 고 김잠식(오른쪽) 씨의 젊은 시절 사진. 가족 제공.
최복순(왼쪽) 씨와 고 김잠식(오른쪽) 씨의 젊은 시절 사진. 가족 제공.

당신 떠나고 나니 우리 젊었을 적 일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가네요. 나 24살, 당신 26살 때 중매로 결혼해서 60년 가까운 시간동안 고생 많이 했지요. 당신은 타이어부터 여러 가지 물건을 파는 장사꾼으로, 나는 동네 구멍가게 하면서 두 아들을 대학까지 보냈지요.

당신이랑 나랑 "우리는 공부 많이 못했지만 자식들 만큼은 공부를 시켜야되지 않겠느냐"며 열심히 돈 벌면서 살았던 세월이 이렇게 흘렀네요. 처음에는 단칸방에서 시작한 살림이 불어나 영천에 집 짓고 살아도 보고, 다시 대구 들어와서 살면서 이만큼 자식 키우고 손주들까지 봤으니 이만하면 잘 산 셈이라고 해도 되겠죠?

글도 모르던 나를 글 공부 배우라고 격려해 준 것도 당신이었지요. 처음에는 배우다가도 먹고 사는 게 바빠서 배우는 걸 소홀히하기도 했었지요. 글 깨치러 이곳 저곳 다니면서도 나이 들면 잘 안 되긴 했지만 당신 격려 덕분에 이제는 당신한테 편지까지 쓸 정도로는 글을 쓸 수 있게 됐어요.

한글 공부 한다고 상 펴놓고 한 글자씩 쓸 때 당신이 옆에서 "글자는 참하게 썼네"라고 한 게 그렇게 응원이 많이 됐어요. 작년에는 동네 근처 복지관에서 배운 한글로 당신에게 편지를 썼는데 직접 주지 못하는 게 안타깝네요. 액자로 걸어놨으니 하늘에서 잠깐 내려와서 읽고 갔으면 좋겠네요.

우리가 살면서 좋은 일, 나쁜 일, 어려운 고비 많이 만났지만 이만하면 잘 살아온 거 맞지 싶어요. 두 아들 착하게 잘 자라서 부모 봉양 잘 하고, 며느리들도 당신 생전에 우리들 잘 돌봐줬고 지금도 혼자 있는 나를 잘 돌봐주고 있어서 심심치 않게 잘 지내고 있어요. 병원 갈 때도 날 데리고 잘 다니고 있구요. 손녀들은 다들 좋은 대학 가서 장학금도 받아오고 한답니다.

당신이 세상 떠나고 나서 내 꿈에 한 번 당신이 나온 적 있어요. 쌀 한 포대를 마당에 툭 던져놓고는 나보고 "빗자루 들고 와서 포대에서 흐른 쌀알 얼른 쓸어 넣어라"고 말했었지요. 깨고 나서도 선명하게 꿈이 기억에 남았는데, '하늘에서도 나랑 자식들 밥 굶을까봐 걱정하는구나' 싶어서 마음 한 구석이 짠했네요.

영감님, 당신이랑 함께 최선을 다해서 그럭저럭 열심히 살았습니다. 같이 사는동안 행복했습니다. 하늘에서 우리 잘 사는 거 잘 지켜보고 계세요. 나랑 같이 살아줘서 고마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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