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울진동물보호소에 입소한 산불 피해 동물. 온 몸이 까맣게 그을린 채로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고 있다. 임소현 기자
다닥다닥 붙은 초록색 철창 사이로 한 녀석이 코를 들이박고 킁킁댄다. 손을 내밀어 쓰다듬자 기다렸다는 듯 자세를 낮춘다. 자신을 봐달라며 낑낑대는가 하면 제 키를 훌쩍 넘는 철창을 펄쩍 펄쩍 뛰어오르는 녀석도 있다.
사랑을 갈구하는 애달픔의 틈바구니 속 유난히 조용한 철창이 있다. 비어있나 싶어 자세히 들여다보니 구석에 처박힌 채 눈만 끔뻑대는 녀석이 있다. 아무리 불러도 미동조차 없다. "저 친구요? 순하긴 한데 곁에는 잘 안 올 거예요. 이번에 화재로 집이 다 타버렸거든요"

울진군 동물보호센터 내부 모습. 다닥다닥 붙은 초록색 철창 안에 보호 동물들이 갇혀 있다. 임소현 기자
◆ 울진군 동물보호소에 산불 피해 동물 속속 입소
지난 3월 15일 검게 그을린 개 두 마리가 울진 동물보호소에 왔다. 그중 한 마리는 화상과 상처가 심해 동물보호단체 '위액트'가 입원 치료를 위해 구조해 갔고, 남은 한 마리는 보호소에 남겨졌다. 검은 개라고 해도 믿을 만큼 누렁이의 몸은 온통 잿빛이다.
경북 울진군 북면에서 시작된 산불은 213시간의 역대 최장 기록을 남기고 진화됐다. "하루아침에 집이 다 타버렸는데, 사람이나 동물이나 황망한 건 똑같지 않을까요"
보호소 직원의 안내를 받아 철창 곳곳을 둘러보는데 치워지지 않은 대소변이 바닥에 흥건하다. "지난주까지는 봉사 신청을 받아 내부 청소나 산책 등을 봉사자분들이 도와주셨는데, 얼마 전부터 코로나가 심해지며 단속이 심해졌어요. 그래서 요즘은 자원봉사 방문도 받지 않고 있습니다" 전국 곳곳에서 후원 물품과 도움의 손길이 잇따르고 있다지만 그마저도 코로나 상황으로 여의치 않게 됐다.
하지만 입양이 확정된 아이들을 이동시켜줄 봉사자들은 간간이 방문하고 있다고. 경기도 이천에서 왔다는 고은철 씨는 이날 미국으로 입양 가게 된 개 두 마리를 데리러 왔다. "이 아이들은 입양 가기 전에 광주광역시에서 임시보호를 받게 되는데, 울진에서 광주까지 이동시켜줄 봉사자가 필요하다길래 한달음에 달려 왔어요. 안락사 될 뻔한 녀석들이 입양 된다는데, 기쁨 마음으로 도와줘야죠"

기자가 철장에 갇힌 산불 피해 동물을 매만지고 있다. 손을 내밀어 쓰다듬자 기다렸다는 듯 자세를 낮춘다.임소현 기자
산불은 꺼졌지만 피해 동물은 계속해서 나오고 있다. 구조된 동물은 치료가 필요한 경우 동물 단체가 데려가고, 나머지는 입양 공고 기간 동안 보호소에 머무른다. 운이 좋으면 입양이나 임시보호처를 바로 찾지만 그렇지 않을 땐 안락사 위기에 놓이게 된다. 주인이 있는 동물들도 신세는 마찬가지다. 상처가 심한 경우 소유권을 포기하는 일이 다반사고, 다시 찾으러 올테니 맡아달라는 주인의 말도 일정 기한이 지나면 효력이 없다.

산불로 폐허가 된 민가에서 길고양이들이 먹이를 찾고 있다. 임소현 기자
◆ 산불 피해 현장, 삶의 터전 잃은 길 위의 동물들
보호소를 나와 마주하게 된 화재의 흔적은 처참 그 자체다. 울창한 산림을 자랑했던 산은 모두 까맣게 타버렸고 곳곳에 있던 민가는 폭삭 무너져 마을은 스산한 분위기까지 감돈다. 그 적막함을 깨고 어디선가 밝은 목소리가 들려온다. "기자님 이것 보세요. 고양이들이 다 먹고 갔나 봐요!"
앙상한 뼈대만 남은 집터 앞에 깨끗하게 비워진 하얀 밥그릇 두 개가 놓였다. 성남에서 활동 중인 봉사단체 '따뜻한 공존'은 울진 산불 피해 현장에 남은 길고양이들을 위해 사료 배식을 하고 있다. "불이 나서 사람이나 개나 다 도망을 가도 고양이들은 이 자리를 지키고 있어요. 영역 동물이기 때문이죠. 밥 주는 사람이 없으면 얘네들은 그냥 죽는 거예요."

개인 봉사자들은 산불 피해 민가 곳곳을 돌며 고양이 생존밥 주기를 하고 있다. 임소현 기자
개인 봉사자 30여 명이 참여하는 단체 채팅방에는 매일 새로운 소식이 올라온다. "OO리 마루 밑에서 아기 고양이 한 마리 구조했어요" "사체 수습했습니다. 까맣게 탔더라고요" "화상 치료 보내고 입양처 알아보겠습니다" 전국 각지에서 온 봉사자들은 돌아가며 길고양이 밥을 챙긴다. 구조가 급한 아이들은 포획해서 치료 후 입양을 갈 수 있도록 도와준다.
◆ 재난 사각지대 갇힌 동물들, 정부 안전대책 절실
재해재난은 잊을 만하면 반복되고 있지만 여전히 동물의 안전은 배제되고 유예된다. 동물에 대한 재난 대책의 필요성은 재난재해 상황마다 지적되어 왔으나 반려동물이 함께 입소할 수 있는 대피 시설이 없으며 정부 차원의 안전 대책이 부재한 상황이다. 이러한 탓에 여러 동물단체와 개인 봉사자들이 공공적 개입의 부재를 메우고 있다.

털과 수염이 불에 그을린 누렁이. 김노은 씨는 집이 전소 돼 갈 곳 없는 누렁이를 임시보호하고 있다. 임소현 기자
집이 전소돼 갈 곳을 잃은 누렁이를 받아준 것도 개인이었다. 경주 가산골에 사는 김노은 씨는 3월 10일 화재 피해견 누렁이를 데려왔다. "보호자가 마을회관 쪽에 누렁이를 묶어놓고 대피소로 이동을 하셨어요. 개는 대피소에 못 들어가니깐요. 그래서 보호자님이 생활의 안정을 찾을 때까지 저희 집에서 임시보호하기로 했어요" 화상으로 벗겨진 발바닥을 소독하고 약을 발라주는 일은 노은 씨의 몫이다.
타는 냄새가 나면 불안한지 하울링을 하며 짖는 누렁이를 달래는 일 또한 노은 씨의 몫이다. "제가 이 아이를 안 맡아주면, 보호소로 갈 테고. 또 보호소에서는 일정 기한이 지나면 안락사를 시키잖아요. 그런 이유들로 개인들이 임시보호에 많이 나서고 있는 것 같아요"

동물자유연대는 산불 화재로 인한 반려동물 치료비 100%를 지원하고 있다. 임소현 기자
산불 피해 동물을 지원하는 일은 동물 단체가 나서고 있다. 동물자유연대는 산불 화재로 인한 반려동물 치료비 100%(최대 200만원), 화재로 인한 부상을 당해 개인에게 구조된 길고양이, 유기견 등의 치료비 90%, 화재로 주택 피해가 발생한 반려동물 호텔링 비용 1일 3만원(최대 2주)을 지원하고 있다.
"한 할아버지가 오셔서 반려견을 부탁하더라고요. 산불로 화상을 입었는데 연고를 발라주고 해도 안 낫는다고. 대피소에 같이 못 있으니 집에 묶어놓고 왔는데 치료만 해주면 밥 주고 하는 건 자신이 할 수 있다며 한참을 부탁하시더라고요" 동물자유연대는 할아버지의 가족 누렁이가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조치를 취했다.

동물자유연대가 누렁이를 병원으로 이송하고 있다. 누렁이는 울진 화재로 발에 부상을 입었다.
산불은 꺼졌다. 밤낮으로 물을 퍼나르던 진화대는 임무를 끝냈고, 피해 민가를 담아내기위해 카메라를 들이밀던 취재진의 열기도 사그라들었다. 하지만 대피소에 들어가지 못한 개들은 여전히 마당에 덩그러니 묶여있고 삶의 터전을 잃은 길고양이들은 먹이를 찾아 잿더미를 뒤지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말이다.
◆울진 산불 피해 유기 동물 입양 공고◆

품종 : [개] 믹스견
등록일 : 2022.03.15~2022.03.22
구조장소 : 북면 곡리2길 124

품종 : [개] 믹스견
등록일 : 2022.03.16~2022.03.23
구조장소 : 울진읍 월변 새마을지회 앞

품종 : [개] 믹스견
공고기한 : 2022.03.16~2022.03.23
구조장소 : 울진읍 월변 새마을지회 앞

품종 : [개] 믹스견
공고기한 : 2022.03.11~2022.03.18
구조장소 : 북면 덕구온천로 306

품종 : [개] 믹스견
공고기한 : 2022.03.17~2022.03.24
구조장소 : 울진읍 읍남리 하수처리장 옆
※울진 산불 피해로 보호소에 입소한 아이들입니다. 이 아이들은 입양처를 찾지 못하면 안락사에 처하게 됩니다. 입양을 원하시는 분은 전화 054-789-6795 혹은 카카오톡 채널에 '울진군유기견입양' 을 검색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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