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에 나갈 때마다 가장 두려운 순간은 입국장 심사대다. 내 여권을 넘기며 얼굴을 슬쩍슬쩍 쳐다본다. 손가락 지문을 찍고 내가 나임을 증명해야 한다. 유리 칸막이 반대편 남자(또는 여자)의 처분을 기다리는 짧은 순간이 내게는 비행기를 타고 온 시간보다 길게 느껴진다. 나는 마약 따위는 소지 하지 않았고, 인터폴에 수배자도 아니며 1년 열심히 산 포상으로 저가 항공 비행기표를 끊었노라고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왜 한밤중에 왔냐고 묻는다면 영어로 뭐라고 답해야 할지를 떠올리는 순간.
검은 양복을 입은 사내들이 내 양팔을 붙잡는다. 그들은 권총을 차고 있고 내가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뭐라뭐라 하더니 입국장 안쪽으로 끌고 간다. 우리말로 "한국말 할 줄 아는 사람 없어요"라고 버둥거리며 소리친다. 악몽이다. 입국장에서 느낀 두려움은 간혹 꿈으로 굴러 들어온다.
손에 여권 대신 땀을 쥐고 태연한 척 서 있다. 쾅쾅 도장을 찍은 여권을 유리문 틈으로 밀어낸다. 통과해도 좋다는 신호다. 그제야 이곳에 들어온 이유가 명확해진다. 나는 여행자다. 돌아갈 곳이 있는.
작은 고무보트에 생사를 걸고 대서양을 건너는 사람들이 있다. 더 나은 곳을 위해 떠난 사람들이 아니라 떠날 수밖에 없는 사람들. 떠나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는 그들은 캄캄한 밤 대서양을 건넌다. 그들 가운데 보트가 뒤집혀 한 해 몇천 명씩 입국을 허가받지 못한다. 무사히 도착했다고 해도 육지는 쉽게 그들의 입국을 허락해주지 않는다.
여행자들은 국경을 넘기 위해 생사를 거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생각하지 않는다. 시리아 출생 3살 아이가 인형처럼 숨진 채 해안으로 밀려온 사건도 쉽게 잊는다. 나는 구글맵을 켜고 유유히 입국장을 빠져나온다. 캐리어를 미는 손에 살짝 힘이 들어간다. 이곳에 허락된 시간까지 있다가 돌아갈 것이다.
내가 입국장을 빠져나오는 사이, 지금도 고무보트에 생사를 걸고 숨죽여 바다를 건너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버스를 타고 우크라이나 국경을 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남겨두고 곧 만날 날을 기약하며 손을 흔들 것이다. 눈물을 감출 것이다. 그들에게 허락된 곳은 유리벽 너머의 안전한 곳. 초조하게 "그 안으로 잠시 들어가도 될까요"라고 묻는다. 여행자가 아니라 난민이 되어.
돌아갈 곳이 없는 사람들이 지금도 국경을 넘는다. 알고 보면 우린 모두 이방인이다. 지금 이곳 낯선 지구별에 떨어져 그럭저럭 살아가고 있는 이방인, 정치인들이 배척하고 싸우고 미워하는 동안 수많은 시민들은 '난민'이라는 여권을 쥐고 초조하게 입국장 문이 열리길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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