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유대안의 클래식 친해지기] <11> 두 개의 결혼행진곡

유대안 대구시합창연합회장
유대안 대구시합창연합회장

지난 주말 가깝게 지내는 고등학교 동창의 딸 결혼식에 다녀왔다. 코로나19로 인해 조심스럽긴 하지만 세상에 첫발을 내딛는 젊은 남녀의 결혼을 축하하기 위해 예식장에는 많은 하객이 붐볐다. 요즘 결혼식에서는 예전과 달리 주례자 없이 사회자나 양가 부모님들이 주도적으로 예식을 진행한다. 또 실내가 아닌 실외에서 파격적인 이벤트를 기획, 예전보다 훨씬 다채로운 모습으로 진행되기도 한다.

대부분 결혼식에서는 신부가 입장할 때, 그리고 신랑·신부가 퇴장할 때 행진음악을 사용한다. 신부가 입장할 때는 "딴 딴따 단, 딴 딴따 단…"라며 바그너의 '결혼행진곡'을 사용한다. 사실 이 곡의 내막을 들여다보면 결혼식에서 사용하기 불편한 점이 없지 않다. 바그너의 결혼행진곡은 그의 오페라 '로엔그린' 제3막에 나오는 '혼례의 합창'에서 불리어진 곡이다. 성배를 지키는 기사 로엔그린과 그에게 구출된 엘자가 결혼할 때 축가로 부르는 합창곡이다. 그런데 이 곡은 행복해야 할 결혼식의 절정에 나오는 노래임에도 비극적인 사랑을 암시한다. 신부 엘자는 금기로 되어있는 신랑의 이름을 묻자 신랑은 신부를 떠나게 되고 신부는 그 충격으로 이내 죽고 만다. 결국 이들의 결혼은 파국을 맞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부가 입장할 때 이 곡을 사용하게 되는 데는 어떤 계기가 있었다. 원래 서양에서는 결혼식 때 신부가 원하는 노래나 성가를 불렀는데, 19세기 초 영국 황실의 결혼식에서부터 결혼행진곡을 사용하게 되었다. 영국 빅토리아 여왕의 맏딸 메리 루이즈 공주가 프러시아 왕자 프리드리히 3세와 결혼하게 되었다. 바그너의 열열 팬인 루이즈 공주가 자신이 결혼식장에 입장할 때 '로엔그린'에 나오는 '혼례의 합창'과 멘델스존의 '축혼행진곡'을 연주해 달라고 요청했다. 당시 유럽 상류층 여성들은 루이즈 공주의 결혼식이 선망의 대상이 되었고 그 결혼식을 따라하게 되었다. 이후에 일반인의 결혼식에서도 바그너의 '결혼행진곡'과 멘델스존의 '축혼행진곡'이 널리 사용하게 되었다.

주로 신랑·신부가 함께 퇴장할 때 사용하는 멘델스존의 '축혼행진곡'은 신부가 입장할 때 사용하는 바그너의 '결혼행진곡'보다 훨씬 더 힘찬 느낌이다. "따따따단 따따따단…"라며 트럼펫이 셋잇단음을 불면서 점차 멜로디가 상승하는 장중한 흐름의 곡이다. 이 곡은 멘델스존이 셰익스피어의 희극 '한여름 밤의 꿈'을 공연할 때 사용할 부수음악의 아홉 번째 곡으로 신랑신부가 행진할 때 사용하도록 작곡한 곡이다.

오늘날 결혼식에서 이 두곡을 처음과 마지막 결혼행진곡으로 사용하지만 정작 두 작곡가 간에는 사이가 좋지 않았다. 바그너는 동시대 음악가인 멘델스존을 무척 싫어했다. 당시 독일의 사회주의를 신봉하는 바그너에게 유대인의 은행 재력가 아들로 태어난 멘델스존은 비난의 대상이었다. 반면 유대인들은 바그너의 '결혼행진곡'을 결혼식에서 일절 사용하지 않는다. 이스라엘에서는 바그너 음악이 나치정권에 이용되었다 하여 그의 곡조차 연주하기 꺼려한다.

또 하나의 비사는 바그너가 남의 가정을 파탄시켰는데, 그가 작곡한 '결혼행진곡'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바그너는 리스트의 둘째 딸이자 자신의 제자인 뷜로의 아내 코지마와 불륜관계를 맺어 오다가 결국 코지마를 빼앗아 버린다. 그러자 코지마의 남편이었던 뷜로뿐 아니라 장인이었던 리스트까지 바그너와 절교하게 된다. 바그너는 리스트와 뷜로뿐 아니라 멘델스존까지 좋지 않는 관계에 놓인다. 결혼에 문제가 있고 첨예하게 대립되는 두 음악가의 결혼행진곡을 결혼식에서 동시에 사용하고 있는 점이 아이러니하다. 하지만 지금까지 다른 환경에서 살아온 남녀의 결합과 화합의 차원에서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지 않을까 생각도 든다.

대구시합창연합회장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