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나는 큐레이터다] <7>박소영 독립큐레이터

제1회 강정대구현대미술제, 문예회관 미디어파사드 등 기획
“큐레이터, 동시대 미술 방향 제시…전시 만들 기회 많아지길”

박소영 ㈜PK Art&Media 대표가 사무실에서 활짝 웃어보이고 있다.
박소영 ㈜PK Art&Media 대표가 사무실에서 활짝 웃어보이고 있다.

"독립큐레이터라고 하면 너무 독립군, 독립투쟁 느낌이지 않나요. 저는 소개할 때 항상 전시기획자라고 해요. 큐레이터? 우아한 직업은 절대 아니죠. 이 자리에 오기까지 눈물의 역사들이 쌓여 있어요."

지난 23일 대구 중구 삼덕동에서 박소영 ㈜PK 아트앤미디어(Art&Media) 대표를 만났다. PK아트앤미디어는 전시 및 행사기획 전문회사. 박 대표는 기관 등에 소속돼있지 않고 독립적으로 전시 등 기획 활동을 하는 독립큐레이터다. 강정대구현대미술제, 대구문화예술회관 미디어파사드 등 굵직한 전시들을 기획해온, 지역에서 손꼽히는 전시기획자다.

▶첫 전시에 대한 기억은 어떠한지 궁금하다.

- 프랑스 파리 유학을 마치고 2001년 1월 한국에 돌아와서, 먹고살기위해 시간강사로 일했다. 대구 4년제 대학 대부분을 돌아다니며 정말 쉴 틈 없이 일했다.

그러다 2003년, 한 교수가 내게 특별한 전시 기획을 주문했다. 당시 내가 파리1대학 지도교수의 한국 초청 강의를 주도하고, 프랑스어 통번역 일 등을 하다보니 내 역량을 시험해보고자 했던 게 아닐까 싶다.

문제는 2주 남짓한 시간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 지금은 없어진 대구 원미갤러리를 빌려 기적적으로 전시 기획부터 설치, 평론 작성, 포스터·도록 제작까지 완성했다.

그 때 기획한 전시는 5명의 도예가와 함께 한 '예술의 창조로부터 소비까지-현대 조형도자의 모색'. 첫 날은 단체전, 이후로는 개인전인데 관람객들이 물레 실습 등을 함께 할 수 있는 전시였다. 전시를 하기에 턱없이 부족한 기간과 금액이었지만 비교적 성공했고, 관람객들의 평도 좋았다. 그것이 한국에서의 첫 기획전이었다.

▶수많은 전시를 기획했지만, 그 중 기억에 남는 전시는.

- 2005~2010년 영천 시안미술관 특별초빙큐레이터로 일했다. 2005년 그곳에서의 첫 기획전을 준비할 때도 시간이 촉박했다. 광복 60주년 기념전 오픈이 8월 15일인데, 의뢰를 받은 것이 5월 말이었다. 3개월도 채 남지 않은 시간이었다. 더욱이 대구 작가들을 잘 모를 때라 정말 미친듯이 공부했던 기억이 난다.

대구경북 미술이 전반적인 국내 미술과 병행하며 발전해왔다는 내용의 'A Parallel History'를 기획했는데, 운영위원이었던 원로 평론가들과 교수 등이 이해를 못하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대구경북 미술의 높은 위상'을 주제로 해달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자랑만 하듯 전시를 할 순 없었다. 할 수 없이 성질을 버럭 내고, 내 갈 길을 갔다.

직원과 인턴, 단 2명과 시안미술관 식구들이 온종일 일에 매달렸다. 작가들에게 일일이 전화하며 작품을 구해 전시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로또복권기금 지원사업의 일환으로 진행했던 전시인데, 다행히 우수한 평가를 받아 이듬해에도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이러한 대규모 전시들을 진행하며 호되게 고생하고, 또 많이 배웠던 것 같다.

▶그 외에 어떤 전시를 기획해왔나.

- 미디어파사드에 관심이 많다. 2015년 대구시 지원사업으로 대구문화예술회관 외벽 미디어파사드 총감독을 맡았다. 미디어파사드는 건물 구조에 딱 맞게 디자인하고 연출해야하는, 수월하지 않은 작업이다. 적은 예산이지만 지역에서의 첫 도전을 잘 해냈고, 이후 기회가 닿아 서울 광화문 KT사옥 외벽에 '평창동계올림픽 G-500' 미디어파사드 작품 등을 연출했다. 2020년과 지난해에는 꼭 미디어파사드 작업을 해보고싶었던 강정보 디아크에서 미디어파사드를 연출했다. 건물 자체가 너무 멋있어서 결과물이 무척 만족스러웠다.

박소영 ㈜PK Art&Media 대표가 사무실의 마스코트인 고양이 해리슨을 안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박소영 ㈜PK Art&Media 대표가 사무실의 마스코트인 고양이 해리슨을 안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큐레이터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전시의 맥락, 체계의 중요성이 부각되기 시작한 1990년대 말부터 큐레이터에 의한 큐레이팅이 동시대미술의 흐름을 주도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프랑스의 니콜라 상스와 같이 국제미술계에 막강한 힘을 과시하는 '슈퍼큐레이터' 개념도 생겨나고 있다.

큐레이터는 이렇듯 동시대 미술의 방향을 제시하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베니스비엔날레를 꼭 가서 본다. 당해년도 현대미술의 현주소를 그대로 보여주는 실험실과도 같기에, 그 분위기를 느끼고싶어서다. 그 현장은 그야말로 시각예술의 홍수다.

또한 큐레이터는 다양한 전시네트워크를 조직하고 정보를 제공하는 창조적인 매개자 역할도 한다. 오늘날 미술의 향방을 결정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전시기획에서 독립큐레이터의 역할이 더욱 두드러진다고 볼 수 있다.

▶자신만의 전시 키워드는.

- 파리에 있을 때부터 여러 예술 장르의 크로스오버(융합)에 관심 많았다. 유럽에 있을 때도 학제간 연구를 권장했었다. 2007년 기획한 '바람이 일다'도 그 시도 중 하나였다. 미술, 무용, 음악, 영상이 합류하는 '스펙터클'이었다. 대구시 지원사업이었는데 지원금액이 400만원에 불과했다. 여기저기서 찬조 등을 받아 3천만원을 마련했다. 그만큼 정말 해보고싶었던 연출이었다.

결국 내 전시의 키워드는 '스펙터클'이다. 스펙터클 전시는 단순히 보고 느끼는 시각적 요소만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청각과 촉각 등 오감을 일깨울 수 있는 공간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최근 미술시장의 활황, 큐레이터로서 어떻게 보는지.

- 최근 미술시장의 활황, '작품이 돈 된다'는 생각 때문인 것 같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간과하는 것은 내가 시장에 작품을 내놓는다고 해도 바로 팔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즉시적 환금성이 없는데 환상을 갖고 있는 경우가 너무 많다.

하지만 미술 작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것 자체는 고무적이다. 환금 가치를 벗어나 미술 애호가로 나아가는 과정일 수도 있기에, 그러한 측면에서는 희망적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의 계획 또는 소망은.

- 독립큐레이터의 운명은 한정적이다. 소박하게, 전시 펼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기만을 바랄 뿐이다. 코로나19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이 얼른 나아져서 일이 더 많아졌으면 한다. 지금 운영하는 전시기획 회사도, 미술 전시기획만 해선 굶어죽기 십상이다. 지역의 도심재생 관련 연구부터 책자 디자인, 제작 등을 맡고 있다.

또한 아직 잘 모르는 세계지만, 메타버스 속 전시공간에 대한 공부를 하고싶다. 물리적 공간에 대한 개념이 사라진 곳에서의 전시를 꿈꿔본다.

◆박소영 ㈜PK Art&Media 대표 약력

▷파리1대학 예술학 박사 ▷대구가톨릭대 예술학과 강의전담교수(2007~2008) ▷갤러리분도 아트디렉터(2006~2008) ▷영천 시안미술관 특별초빙큐레이터(2005~2010)

◆주요 전시 및 행사 기획

▷2021·2020 강정보 디아크 미디어파사드 ▷2017·2016 평창동계올림픽 미디어파사드(광화문 외벽·KT사옥) ▷2016·2015 대구문화예술회관 미디어파사드 ▷2012 제1회 강정대구현대미술제 ▷2007 떼아르트분도·갤러리분도 스펙터클 '바람이 일다' ▷2006 영천 시안미술관 'Space Project' ▷2005 영천 시안미술관 '광복 60주년 기념전-A Parallel H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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