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중기의 필름통] 영화 ‘야차’

영화 '야차'의 한 장면. 넷플릭스 제공
영화 '야차'의 한 장면. 넷플릭스 제공

설경구 주연의 '야차'(감독 나현)는 2020년 촬영을 마치고 지난해 개봉 예정이었으나 팬데믹으로 미뤄지다 지난주 넷플릭스를 통해 개봉했다. 오랜만에 만난 한국 첩보 스릴러다. 그러나 아무리 흥미로운 설정도 연출에 따라 얼마나 형편없는 망작이 되는지 잘 보여주는 영화가 되고 말았다.

중국 선양은 스파이들의 땅이다. 남북한은 물론 중국과 러시아, 일본 등 각국 정보기관의 대결이 첨예한 곳이다. 대기업 회장을 무리하게 수사하다 국가정보원 감찰관으로 좌천된 검사 한지훈(박해수)이 이 세계에 뛰어든다. 국정원 선양 비밀공작팀에 대한 감찰 업무를 맡게 된 것이다. 선양의 팀 보고서가 모두 가짜이며, 팀장은 횡령까지 하는 문제 지부라는 이유다.

그가 도착해 보니 여행사를 가장한 선양지부는 조직이라고 할 수 없는 한심한 곳이었다. 팀원인 홍과장(양동근), 희원(이엘), 재규(송재림), 정대(박진영)는 사사건건 간섭하는 지훈을 적대시한다. 무엇보다 고문과 살인도 서슴지 않는 무법천지라는 것이다. 그 중심에 있는 것이 팀장 지강인(설경구)이다. '야차'라는 별명을 가진 그는 독단적이며 저돌적인 인물이었다.

야차는 사람을 잡아먹는 귀신이지만 불법(佛法)을 지키는 수호신이기도 하다. 강인의 양면적인 캐릭터를 잘 묘사한 별명이다. 영화는 순진한 정의파 검사와 산전수전 다 겪은 프로 스파이가 갈등을 겪지만, 우여곡절 끝에 둘이 힘을 합쳐 국가의 이익을 지킨다는 플롯이다.

영화 '야차'에서 한국의 국익을 위협하는 것은 일본 스파이 집단이다. 그들에 의해 '두더지'(이중간첩)가 된 스파이 리스트를 가지고 있는 탈북 인사의 신병을 확보하는 것이 주된 미션이다. 남북 공동의 적인 일본을 사악한 집단으로 설정하면서 관객의 공감도를 최대한으로 끌어올린다. 그 바람에 강인의 무리수도, 지훈의 돌변도 모두 용인되는 놀라운 약효를 낸다. 남북과 일본이라는 첨예함에 상이한 캐릭터의 대결, 전 세계에서 스파이 밀도가 가장 높다는 지정학적 팩트 등이 흥미를 끈다.

'야차'는 총격장면이 많은 전형적인 킬링타임용 스파이 스릴러다. 총기 36정에 총알만 7천발이 넘게 소모됐고, 총기 또한 모두 실제여서 촬영현장에 총기 교관이 상주했다고 한다. 그래서 총격 장면의 사운드와 타격감은 나름 무난하다. 홍콩에서 '두더지'가 된 부하를 처단하는 인트로도 몰입감을 끌어올린다.

그러나 본론에 들어서면서 급격히 흥미가 떨어진다. 스릴러의 필수요소인 긴장감이 실종된 때문이다. 내러티브의 긴장감은 캐릭터의 충돌에서 나온다. 그 불꽃의 강도와 지속력에 의해 관객의 몰입이 좌우된다.

영화 '야차'의 한 장면. 넷플릭스 제공
영화 '야차'의 한 장면. 넷플릭스 제공

강인과 지훈의 갈등은 충분히 매력적인 구도이다. 원칙주의자와 실적주의자의 대결이다. 원칙은 형식을, 실적은 내용을 중시하며, 아마추어와 프로페셔널의 갈등을 끌어온다. 그러나 영화에서 둘의 충돌은 맞붙는 순간 꺼지고 만다.

강인은 지훈에게 유독 관대하고, 지훈은 샌님으로 보기에 너무나 강력한 살인 병기다. 그래서 "무슨 수를 쓰더라도 정의는 반드시 지킨다"는 강인의 웅변은 상투적이며, 이에 맞서는 지훈의 원칙적, 도덕적 양심은 고구마를 짓이겨 넣는 듯 답답하기만 하다. 지훈은 적진 한가운데서도 개그감을 선보이는데, 어설픈 튜닝의 극치이다. 설경구의 연기 타입 또한 '공공의 적' 강철중 형사와 판에 박은 듯 스테레오이고, 팀원들 또한 여럿 되지만 모두 한 색깔을 내는 바람에 앙상블의 맛을 살리지 못한다.

총격신이 가장 큰 장점인 영화이면서 전투의 짜릿함을 느낄 수가 없는 것도 큰 단점이다. '우리 편'은 모두 슈팅 게임하는 '군미필' 같다. 그럼에도 생존력은 람보보다 더하다. 그럴듯한 그림을 만드는 데만 신경을 쓴 때문이다. 그래서 액션이 나름의 특색과 특징을 갖지 못하고 숫자만 여럿인 팀원처럼 지루한 느낌을 준다.

영화 '야차'의 한 장면. 넷플릭스 제공
영화 '야차'의 한 장면. 넷플릭스 제공

첩보 스릴러는 통상적으로 양 겹의 껍질을 싸고 있다. 강력한 외부의 적과 함께 경계해야 할 내부의 적이다. 이중간첩인 '두더지'에 대한 묘사인데, 모두 돈에 넘어간 두더지 일색이며 이 또한 너무 남발해 신선함이 떨어진다.

'야차'는 21세기 한국영화의 만듦새를 하향시키는 영화다. 모양에만 치중한 화보집 같은 영화다. "영화를 망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영화를 통해 억지로 뭔가를 증명해 내려 애쓰는 것"이라고 했다. '야차'가 증명하려고 애쓴 억지스러운 정의가 결국 영화를 망치고 말았다. 한편, 투자자에게는 넷플릭스가 은인이었을 것이란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125분. 15세 이상 관람가.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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