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관(稗官)이 동네 떠도는 이야기하듯 쓰는 '패사소품체'(稗史小品體)가 유행했다. 왕은 나라의 기강을 세운다며 고답적(高踏的) 문체로 되돌리려 했다. 그러자 정적(政敵)의 글을 문체가 가볍다 고발하는 경우도 생겼다. 조선 정조 때 있은 '문체반정'(文體反正)이다. 21세기에 읽어도 흥미로운, 박지원의 '열하일기'가 금서 목록에 오른 시대였다.
일부의 기호식품처럼 인식되던 판타지 장르소설이 몇 년 사이 주류로 자리 잡았다. 여러 독자들의 간택에 돈의 기운이 실리자 소재와 표현이 한층 다양해졌다. 무엇보다 쉽게 쓰였다. 한때 유행으로 그칠 조짐이 아니다. 온라인과 모바일로 소비되는 '웹소설'의 흥행도 같은 맥락이다. 시장 규모가 6천억 원대다. 종이책 시장 규모(7천억 원)와 맞먹는다.
TV를 안 본다고 '영상을 안 보는 시대'라 말할 수 없듯 '읽지 않는 시대' 역시 온 적이 없다. 압도적 가독성을 뽐내는 웹소설의 경쟁자는 곱씹어 읽어야 하는 순문학 작품이 아니다. 동영상 콘텐츠가 넘치는 유튜브다. 기발하면서 눈에 착착 감기는 표현들이 웹소설에 넘쳐나는 이유다. 읽자마자 장면이 그려지는 묘파(描破)력에 무릎을 치길 여러 번이다.
지난 2월 경북대 교육혁신본부 교양교육센터가 신입생 3천15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기초학력 글쓰기 영역 진단평가 결과가 공개됐다. 전체 평균이 44점에 못 미쳤다. 문해력이 특히 낮았다. 36점 남짓이었다. 동영상에 익숙한 환경이 원인으로 꼽혔다.
그런데 시험을 치른 학생들은 질문 자체가 난제였다고 답했다. 한 자율전공부 신입생은 "수능 지문만큼 어려운 건 아니었다. 몇몇 문제는 문제 자체를 이해하기 어려웠다. 생각을 많이 하고 풀어야 해서 시간이 부족했다"라고 했다.
신입생들의 문해력이 낮다면 입시 문턱이 낮아졌거나, 진단평가 문제가 어려웠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후자 때문이라면 교수 사회는 현학적인 글에 함몰돼 있지 않은지 돌이켜볼 필요가 있다. 시대 흐름을 간과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진심을 편지지 위가 아닌 메신저에 눌러 전하는 시대다. 사용하는 언어도 그만큼 바뀌었다. 고매(高邁)한 학풍을 효율적으로 전하려면 문체의 변환도 꾀해 볼 수 있지 않을까.
김태진 논설위원 novel@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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