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책] 작별인사

김영하 지음/ 복복서가 펴냄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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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인사/ 김영하 지음/ 복복서가 펴냄
작별인사/ 김영하 지음/ 복복서가 펴냄

이 세상에 끝없이 영원한 시간만 있다면, 작별인사가 어떤 의미가 있을까. 필멸의 시간을 사는 우리에게 만남은 곧 헤어짐이다. 살아있는 자에겐 반드시 죽음이 오고 만다. 즉, 영원의 시간을 사는 존재에게 작별은 없다.

소설의 배경은 그리 머지않은 미래, 통일된 한국이다. 인간과 유사한 외형과 행동 양식을 갖춘 로봇 '휴머노이드'가 인류에 보급된 시대다. 열일곱 살 소년 '철이'는 평양의 유명한 휴머노이드 연구소에서 아버지와 함께 평화로운 나날을 보냈다. 금속이 아닌, 철학의 그 '철'이다. 어느 날 철이의 삶이 송두리째 뒤흔들릴 사건이 발생한다. 낯선 남성들에 의해 무등록 휴머노이드 수용소로 끌려가게 된 것이다.

느닷없이 수용소로 던져진 철이는 살아남기 위해 배우 지망생처럼 기계를 흉내낸다. 피할 수 없는 질문이 어김없이 다가왔다. 고전 SF영화나 소설에 단골처럼 등장하는 존재론적 질문이다. 인간과 한없이 가까운 로봇과 로봇에 한없이 가까워지는 인간을 구분짓는 경계는 무엇인가.

"처음엔 그저 그들을 흉내냄으로써 안전을 도모한다는 뜻에서 시작한 일이었는데, 점차 그들과 나 사이에는 과연 무슨 차이가 있는 걸까 궁금해졌다. 그들의 관절은 연골과 윤활액 대신 인공적으로 합성한 유기화학 제품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 뇌에 뉴런 대신 회로가 있다는 것 등의 차이들이 있겠지만, 이미 많은 인간이 뇌에 칩을 박아 컴퓨터와 연결하거나, 잘린 팔다리 대신 인공 수족을 장착하여 높은 곳에 쉽게 뛰어오르거나 무거운 것을 가볍게 들고 있다.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자신의 존재에 대해 품기 시작한 의문은 나날이 커진다. "나는 정말 아빠가 정교하게 만들어낸 피그말리온이었을까?"

이야기가 중반부로 흐르는 시점에서 철이의 고민은 한층 더 깊어진다. '고통으로 가득한 삶을 지속할 가치가 있는지', '어쩔 수 없이 태어났다면 어떻게 살고 어떻게 죽어야 하는지'에 대한 철학적 사유가 계속 이어진다.

주인공 일행은 부서진 동료 로봇을 되살리기 위해 재생 휴머노이드 '달마'를 찾아가고, 곧 '세상은 고통으로 가득하기에 태어나지 않는 편이 낫다'는 명제를 두고 논쟁을 벌이기 시작한다.

달마는 말한다. "살면서 기쁜 순간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대부분은 괴로움에 시달리거나 혹시 찾아올지도 모를 기쁜 순간을 한없이 갈망하면서 보냅니다. (중략) 그런데도 이 아이를 다시 살려서 이제 더는 겪지 않아도 될 이 모든 고통을 다시 겪게 할 것인가요?"

'작별인사'는 김영하가 2019년 한 신생 구독형 전자책 서비스 플랫폼으로부터 회원들에게 제공할 짧은 장편소설을 써달라는 청탁을 받고 집필한 소설이다. 선공개 2, 3개월 뒤 정식 출간하기로 계획했지만, 그 사이 코로나19가 터졌다. 그 때문이었을까. 원고를 고쳐나가던 작가는 자신의 글이 낯설게 느껴졌다고 했다. 고쳐쓰기의 과정은 2년이나 걸렸다. 400매가량의 원고는 800매로 두 배 가까이 늘었고 주제도 완전히 달라졌다.

개작을 거치면서 당초 핵심 주제였던 '인간과 인간이 아닌 것의 경계'에 대한 비중이 크게 줄었다. 대신 태어남과 죽음, 만남과 이별의 변증법이 작품 전체를 관통한다.

철학적인 질문과 흥미로운 이야기의 만남은 언제나 좋은 시너지를 낸다. 사람과 닮은 기계, 기계의 반란, 통 속의 뇌 등 다소 진부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소재지만, 이를 엮어낸 솜씨는 '역시 김영하'라는 말이 나올 만하다. 등장인물 간의 논쟁이 소설의 대부분을 차지하지만, 경쾌한 문장과 서사적 긴장이 돋보인다.

이 작품의 제목이 너무나도 평범한 (어쩌면 진부하거나 식상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작별인사'인 이유는 마지막에 밝혀진다. 그야말로 온 힘을 다해 작별의 감정을 전달하는, 강렬한 마무리다. 작가는 작품의 제목을 거의 마지막 순간이 돼서야 정했다고 했다.

그것은 다시 돌아오지 않기에 소중한 지금, 떠나가는 이와 떠나보내는 이가 건네는 인사다. 작가는 후기를 통해 이렇게 덧붙인다. "가끔 내가 그저 생각하는 기계가 아닐까 의심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 순간이면 그렇지 않음을 깨닫고 안도하게 된다. 봄꽃이 피는 것을 보고 벌써 작별을 염려할 때, 다정한 것들이 더 이상 오지 않을 날을 떠올릴 때, 내가 기계가 아니라 필멸의 존재임을 자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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