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보훈섬김이 김국말 씨 "어르신들이 '자식보다 낫다' 할 때 보람 느껴요"

65세 이상 보훈 가족 돌봄 보훈처 사업
나라 위해 헌신한 11명 어르신 돌봄…하루 3명 이상 방문 생활 도움·말벗
"노력 알아주시는 어르신들 덕분에 이 일을 시작하길 잘 했다고 느껴"

무공수훈자 유족 이병술(84) 어르신을 돕는 보훈섬김이 김국말(60) 씨(사진 왼쪽). 이화섭 기자.
무공수훈자 유족 이병술(84) 어르신을 돕는 보훈섬김이 김국말(60) 씨(사진 왼쪽). 이화섭 기자.

지난달 27일 오후 1시 대구 달서구의 한 아파트에 사는 이병술(84) 어르신의 집에 김국말(60) 씨가 찾아왔다. 김 씨는 무공수훈자의 유족인 이 씨의 '보훈섬김이'로 이 씨의 가사 일을 도와드리고 있다. 이날 김 씨는 이 씨의 집안 곳곳을 청소하며 이 씨의 말벗이 돼 주었다. 이 씨는 김 씨를 '김 여사'라 부르며 "김 여사 덕분에 어려움 없이 잘 생활하고 있다"며 김 씨를 칭찬했다.

김 씨는 활동한 지 8년이 넘은 베테랑 보훈섬김이다. 보훈섬김이란 노인성 질환을 앓고 있거나 홀로 사는 65세 이상 보훈대상자 중 일상생활에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도움을 제공하는 국가보훈처의 사업이다. 대구에만 해도 올해 약 90여명의 보훈섬김이들이 대구 곳곳에 있는 보훈대상자들의 생활을 챙기고 있다.

슈퍼, 방앗간 등 여러 자영업으로 생계를 꾸려가던 김 씨는 굉장히 우연한 기회에 보훈섬김이 활동을 시작했다.

"지인의 친구로 알고 지내던 사람이 보훈섬김이 활동을 하고 있었더라구요. 그 때가 방앗간을 할 때였는데, 그 동네 근처에 온 그 사람이 '보훈대상자에게 전달할 도시락을 잠시 보관해달라'고 하던 그 때 '보훈섬김이라는 게 있구나'란 걸 알았죠. 게다가 하필 방앗간 건물 주인이 방을 빼라고 하던 참이어서 다른 직업을 찾아야 했고, 그래서 보훈섬김이에 도전해 재수 끝에 일을 하게 됐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할머니와 같이 살았고, 결혼 이후에도 시할머니까지 모셔본 경험 덕분에 김 씨는 고령의 보훈대상자 어르신을 대하는 게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고 한다. 일하다보니 어르신을 대하는 이 일이 적성에 맞기도 했다고.

김 씨가 보훈섬김이 활동을 통해 돌봐드리는 보훈대상자 어르신은 11명. 하루에 3명 정도의 어르신 댁을 방문해 2~3시간씩 방문해 청소, 식사 챙기기, 빨래 등과 같은 가사 활동부터 어르신들의 건강을 챙기기 위해 병원 동행에 운동이나 산책 활동도 도와준다. 거동이 불편하고 주변에 도움의 손길을 요청할 데가 없는 분들이 많아 도와드리는 시간은 늘 빠듯하다. 게다가 코로나19 이후 외부인의 방문을 꺼리는 어르신들도 간혹 있다보니 이 분들의 경우 전화를 통해 자주 안부를 묻고 불편한 부분을 챙기는 것으로 대신한다. 김 씨는 "코로나19로 외부인 방문을 꺼리는 어르신들의 경우 오히려 혼자 계셔서 우울함을 느낄까 더 걱정돼서 전화를 자주 하게 된다"고 말했다.

나라를 위해 헌신한 분들을 돕는 일이기에 김 씨는 항상 어르신들을 더 많이 도와드리려 노력한다. 특히 거룩한 헌신에도 불구하고 몸과 마음에 불편함을 겪는 어르신들을 곁에서 지켜보다보면 안타까움도 함께 들기 때문에 더욱 더 열심히 도와드리려 애쓴다. 이런 노력을 알아주는 어르신들도 많기에 김 씨는 늘 '이 일을 시작하기를 잘 했다'고 느낀다.

"저희 집이 시골에 작게 농사를 짓는 곳이 있어요. 거기서 수확한 채소 등을 가끔 나눠드리거든요. 그러면 너무 좋아하세요. 농사일이 힘든 걸 어르신들도 아시니까 직접 기른 채소들을 가져오면 '고생 많이 했을텐데'라며 알아주시기도 하시죠. 그러면서 '김 여사가 자식보다 더 자주 찾아오고 더 잘 챙겨준다'라는 말을 들을 때면 일하면서도 힘이 나고 '이 일 하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들죠."

김 씨는 앞으로도 보훈섬김이 일을 계속 하면서 어르신들에게 최대한 도움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한다.

"나라를 위해 희생하고 헌신하신 분들이잖아요. 만날 때마다 정말 잘 보살펴 드려야겠다고 다짐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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