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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숙의 옛그림 예찬] 동생을 잃은 슬픔에서 나온 천경자의 그림

미술사 연구자

천경자(1924-2015),
천경자(1924-2015), '내가 죽은 뒤', 1952년(29세), 종이에 채색, 43×54㎝, 개인 소장

'내가 죽은 뒤', 또는 '부활'로 알려진 이 작품은 호랑나비 한 마리와 황토색 배경 위의 하얀 뼈들, 붉은 꽃 두 송이가 그려져 있다. 죽은 사람의 뼈는 파격적이고 섬찟한 소재다. 오른쪽 아래에 한자로 '1952 경자'로 서명하고 '천경자' 인장을 찍었다. 6·25 중에도 붓을 놓지 않은 천경자 화가의 나이 스물아홉일 때다.

동생을 잃은 비통한 마음에서 이 그림이 나왔다. 하나 뿐인 여동생 옥희가 전쟁 통이라 약도 제대로 써보지 못한 채 꽃다운 나이에 폐결핵으로 죽었다. 시신을 화장해 뼛가루를 강물에 뿌렸다. 유난히 사이가 좋았던 동기를 잃은 상실감, 가장 역할을 하고 있던 언니로서 지켜주지 못한 죄책감을 천경자는 육신의 숨이 멈추고 그 살이 다 썩어 없어진 뼈를 그리며 정을 떼고 죽음을 직시하려 했다.

그는 이 그림을 그리기 위해 광주도립병원을 찾아가 사람의 골반골, 대퇴골, 늑골을 스케치했다. 천경자는 17세 때 전남 고흥에서 도쿄로 떠나 여자미술전문학교에 유학해 그림을 배웠고, 조선미술전람회에 두 번이나 입선한 엘리트 화가다. 광복 후 모교인 전남여고 미술교사로 근무하며 광주에 살고 있었다.

'내가 죽은 뒤'는 실제 인골을 사생해 그리면서 흰 뼈, 화사한 꽃, 알록달록한 나비로 삶과 죽음, 이승과 저승을 은유하며 환상적인 화면으로 완성한 젊은 천경자의 역량을 잘 보여준다. 실물 사생과 화가의 상상이 섞였고, 사랑하는 정과 잊지 않으면 내가 살아갈 수 없어 잊으려 애쓰는 정한(情恨)이 함께 있다.

서양미술에서 죽음에 대한 극복책으로 인골을 그린 그림으로 17세기 네덜란드에서 인기를 끈 '바니타스 정물화'가 있다. 바니타스(vanitas)는 라틴어로 '텅 비었다'는 뜻이다. 주요 소재는 머리뼈인 해골이다. 나의 궁극적 모습인 해골 그림을 벽에 걸어놓고 죽음을 상기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부자들의 거실에 걸린 값비싼 유화인 바니타스 정물화는 인생의 유한함에 대한 달관이라는 영혼의 허영을 과시하는 정신적 사치의 인테리어였을 것 같다.

'내가 죽은 뒤'는 젊은 여성화가가 자신이 맞닥뜨린 불행에 굴하지 않고 대담하게 예술로 맞서며 용기와 희망을 놓지 않은 그림이다. 천경자는 고통을 작품으로 승화시켰다.

젊은 시절부터 천경자는 채색을 구사하는 기법과 화풍도 남달랐지만, 자신의 삶과 밀착해 있는 주제를 줄곧 그림화한 특출한 예술가다. 슬픔 속에서도 죽음 자체를 사유했고, 인골을 사생하며 구체적 대상에서 떠나지 않는 그림을 그렸다. 잎 하나 없는 녹색 꽃대의 이 꽃은 상사화(相思花)다. 꽃과 잎이 따로 피어 만날 수 없어 서로 그리워한다는 이름이 붙었다. 우리말로는 꽃무릇이다.

미술사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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